푸틴 승리로 끝난 '노딜' 미·러 정상회담
트럼프, 휴전 대신 평화협정 선회
우크라에 '돈바스 영토포기' 압박
2025-08-17 17:41:36 2025-08-17 17:42:45
[뉴스토마토 박주용·한동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러 정상회담에서 기대됐던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습니다.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휴전 해법의 공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넘겼습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압박에도 휴전의 책임을 우크라이나로 넘기는 데 성공하면서 사실상 이번 회담에서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8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푸틴 대통령이 평화협정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 영토 포기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앨먼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푸틴, 18년 만에 미 방문…트럼프도 이례적 '환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만나 대략 2시간30분 동안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휴전 합의에 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별다른 합의는 없었지만, 푸틴 대통령이 2007년 이후 18년 만에 미국을 정식으로 방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서방 국가의 땅을 밟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푸틴 대통령을 향해 비난 수위를 높여왔지만 정상회담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환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뒤 레드카펫 위에서 푸틴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려 다가오자 손뼉을 치며 환영했습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전용 방탄차 '더 비스트'에도 푸틴 대통령과 함께 탔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영토 내에서 열린 회담인데도 푸틴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먼저 발언하도록 양보했습니다. 평소 다른 정상과의 회담에서 대화를 주도하던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실상 회담 결과도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바대로 이뤄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요구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푸틴 대통령에게 즉각 휴전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를 압박할 것이라고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인 휴전 요구는커녕 그 어떤 제재도 부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푸틴 대통령의 입장을 수용하며 평화협정을 통한 종전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사수해 준 모양새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실질적인 양보를 하지 않은 채 미국의 제재 칼날로부터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다음 날인 16일 새벽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끔찍한 전쟁을 종식하는 최선의 방법은 전쟁을 끝내는 평화 협정으로 직통하는 것이지 지켜지지 않기 일쑤인 휴전 협정의 체결에 머무는 게 아니라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이 끝난 뒤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 지도자와의 통화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접경한 동부 돈바스를 이양하라는 푸틴 대통령의 구상도 지지한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에 이를 수용할 것을 압박했습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주를 아우르는 돈바스 지역은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으로 러시아가 줄곧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해 온 지역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18일 젤렌스키 회담 주목…북·러 밀착에 대북 해법 '난항'
 
일단 공은 우크라이나에 넘어왔습니다. 오는 18일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답을 내놓을지에 따라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은 크게 달라질 전망입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러 정상회담이 끝난 후 휴전을 거부하는 러시아를 비판했지만 영토 분할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는 내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3년 반을 끌어온 전쟁은 마무리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방안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상황은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18일 회담에서 지난 2월 말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다가 J D 밴스 부통령에게 크게 면박을 당하는 과정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2일까지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3자 회담을 준비할 생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마저 언론에 보도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한 합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우며 러시아와 강하게 밀착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선 이번 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의 친선 관계 발전에 더욱 공을 들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회담 직전 김 위원장에게 상황을 공유하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미·중·러 삼각게임에 북한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은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제성훈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북한으로선 러시아와의 관계가 엄청난 카드가 됐다"며 "이제 한국은 대러 관계를 개선해야 북한과의 관계도 뭔가 해볼 수가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남북 관계를 풀고 싶으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시그널이라도 줘야 한다"며 "미·러 관계가 개선되고 난 후 시그널을 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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