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 움직임에 긴장
2025-08-20 15:57:25 2025-08-20 16:18:07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국민연금이 주요 금융지주사 지분을 확대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강조해온 인물인데요. 정부가 국민연금과 금융당국을 통해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 선임이나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개입할 불씨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지주 지분 늘린 국민연금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현재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분을 6~9%대 보유하고 있습니다. 신한금융(신한지주(055550)) 9.30%, 하나금융지주(086790) 8.95%, KB금융(105560) 8.35%, 우리금융지주(316140) 6.70% 등입니다. 
 
국민연금은 최근 수년간 경기 침체와 상생금융 압박 등 금융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이유로 금융지주 지분을 줄여왔습니다.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신한금융을 기준으로 보면 2021년 말 8.78%였던 지분은 2022년 7.69%, 2023년 7.47%까지 줄어든 바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KB금융 지분을 일반투자 목적으로, 나머지 지주사의 지분을 단순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반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사 선임 반대, 배당 제안, 위법 행위 임원에 대한 해임 청구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단순투자는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관여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데요. 몇해 전부터 시행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맞춰 금융지주사 주총에서 입김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입니다. 
 
국민연금이 상장 기업에 대한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금융지주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지주 내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CEO 연임, 보수 한도, 사외이사 선임 등 경영 안건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새로 취임한 이찬진 금감원장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적극 옹호하던 점도 경계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과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정당한 책임"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습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안, 대한항공 오너 리스크 이슈 등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이 원장은 취임사에서도 "기업은 주주가치를 중심으로 공정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금융감독 철학의 핵심으로 제시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국민연금이나 금융당국을 통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를 흔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표심을 행사할 때 금감원장의 정책 기조와 맞물리면, 금융지주 CEO 선임과 보수 한도 설정 등에서 경영진 입김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ISS 등의 권고를 참고하고,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의결권을 행사한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사진=뉴시스)
 
금감원장도 '의결권 행사' 옹호
 
국민연금은 지난 3월 금융지주 정기 주총에서 주요 안건에 대해 찬성 기조를 보였지만, 과거에는 CEO 연임안, 사외이사 선임안, 임원 보수 한도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윤석열정부 초기에는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를 통해 당시 신한금융의 조용병 회장과 우리금융의 손태승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들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모두 반대 결정을 내렸습니다. 금융당국의 거취 압박까지 더해지며서 이들 회장은 결과적으로 자리에 물어나야 했습니다. 
 
올해 초 정기 주총에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가 일부 금융지주 이사 선임안에 반대를 권고한 것도 변수입니다. ISS 권고가 해외 기관투자자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민연금이 국내 투자자 측에서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면 금융지주사 경영진에 미치는 압박은 커질 수 있습니다. 
 
이재명정부의 금융 개혁 과제인 '편면적 구속력" 제도가 현실화할 경우에도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명분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편면적 구속력은 소비자 동의만으로도 분쟁조정안이 강제력을 갖게 되는 제도입니다. 현재 제도는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양 당사자가 모두 수락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한지만, 그러나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면 소비자 동의만으로 효력이 생깁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제시한 소액사건 기준은 1000만~2000만원 수준으로 실제 금융상품 판매 상당수가 적용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게 금융업권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때에도 피해액 대부분이 2000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분쟁이 대상이 되는 셈입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금융사가 부담해야 하는 배상금 규모가 커지는 데다 조율할 여지 없이 조기에 확정될 경우 기업가치와 주가에도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며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이 주주가치 보호를 명분으로 경영 개입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올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줄어든 것은 탄핵 시국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정권 초기에 국정 방향에 맞춰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연금은 현재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분을 6~9%대까지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 본사 모습. (사진=각 사)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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