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최근 포스코이앤씨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서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긴장 수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강경한 기조를 고려하면 은행권도 대출·보증 제한 등 제재 조치를 마련해야 하는데요. 주요 건설사의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는 은행들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대출 제재' 수위 조절 고민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의 주채권은행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이 나눠 맡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최근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출과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금융위원회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은행이 대출 심사를 할 경우 이를 반영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후 포스코이앤씨에서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이 대통령은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제재 방안을 찾아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강경한 기조를 고려하면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제재 수위가 강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건설사를 주채권은행으로 둔 은행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주채권은행은 채무 기업의 구조조정 주도, 채권단 협의, 재무구조 평가 등을 책임지는 만큼 해당 기업의 신용등급 변동이나 영업 정지, 면허 정지 등 경영 차질이 발생하면 직접적인 자금 회수 부담에 직면하게 됩니다.
중대재해 발생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 하락, 평판 리스크 확대와 함께 신용평가사 등급 조정의 사유가 됩니다. 은행은 현재도 기업 신용평가를 할 때 재무적 요소에 더해 ESG 점수 등 비재무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대통령이 ESG 평가 강화에 대해 '원시적 접근'이라고 지적한 만큼, 직접적인 대출 규제 조치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기업에 대한 대출 신용평가 과정에서 중대재해를 반영해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기업에 대출을 심사할 때 기업의 신용평가에 따라 금리나 여신 규모를 책정하는데요. 중대 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신용등급을 떨어트려 불이익을 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 등급은 A+입니다. 투자적격 등급에 해당하지만 평판 리스크로 인해 향후 사업 경쟁력과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기존 대출의 금리 인상, 차환 부담 증가, 신규 자금 조달 제약 등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주채권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여신 한도를 줄이거나 보증 조건을 강화하는 조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기업 대출 심사 과정에서 중대재해를 반영해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은행영업점 기업 고객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면허 정지 땐 유동성 위험
건설업 특성상 대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과 선금 지급 구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면허 정지나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리면 공사 입찰이 막혀 매출 공백이 발생하고, 공사 중단으로 미회수금이 늘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은행은 이런 상황에서 대출 회수나 기한이익 상실(일시 상환 요구) 조치를 검토하게 되는데요. 과거 HDC현대산업개발은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단기간에 신용등급이 두 차례 하향 조정됐고, 은행권은 신규 여신 공급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금융감독원도 빚이 많아 채권은행의 재무안전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를 평가할 때 중대재해 발생 위험 등 잠재 리스크를 적극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금융 제재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금감원은 매년 총차입금과 은행권 신용공여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계열기업군을 '주채무계열'로 지정하고, 주채권은행이 재무구조를 평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큰 건설사와 조선사 등 제조업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업 특성상 추락과 붕괴, 낙하물 충돌 등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조선업도 제조 공정이 복잡해 하청업체가 많은데, 규모가 영세한 데다 노동 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이 많습니다.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의지를 감안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 대출에 대한 심사에서 페널티를 줘야 하는 방향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단순히 중대재해 발생 여부 만으로 대출 중단과 회수를 결정하기는 어려워 금융 제한 수위 조절에 고민이 깊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와 한도 등 가격 결정은 신용등급과 재무 상태, 채무 상환 능력 등을 기반으로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주채권은행의 역할과 채무기업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이 채무 기업의 재무구조 평가 등의 책임을 지는 만큼 사안의 중대성과 개선 여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며 "원청 기업뿐만 아니라 협력 업체, 직원 생계에도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6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경기 광명시 포스코이앤씨 광명고속도로 공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