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기능적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신설을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금감원 내 금소처 역할과 권한을 키우면서 소비자 권익 보호를 국정 과제로 내세운 이재명정부 기조에 부응하는 모양새입니다.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명분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소처의 인사·예산권을 독립적으로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금소처의 기능적 분리가)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전체적인 예산 확보와 편성은 금감원 본원에서 맡겠지만, 소비자 보호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독립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임원회원에서 "조만간 중요한 발표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조직개편 발표가 다음 주 빠르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금소처는 금감원 내부 조직으로 편제돼 있지만, 각 부문 부원장이 인사권을 일부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인사 독립성은 어느 정도 확보돼 있습니다. 그러나 예산권은 여전히 본원에 집중돼 있어 정책 집행력과 조사 역량 강화하는 데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금소처에 예산 편성과 집행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습니다. 예산권을 확보하면 금소처는 금융소비자 피해 조사, 불완전판매 제재, 집단분쟁 조정 등 다양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며, 정책 실행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소처의 독립성 강화는 궁극적으로 금소원 신설을 염두에 둔 과도기적 모델이라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정부는 국정 과제를 통해 이미 금소원 설립을 언급했고, 금감원 내부에서도 이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 금융감독 체계 개편 때에도 과도기적 모델을 도입해 조직 분리와 권한 조정을 연착륙시켰다"며 "금소처 권한 강화 역시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전제로 한 준비 단계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찬진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찬진(가운데) 금감원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조직개편 전 과도기적 모델
과거에도 조직개편 과도기에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조직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행 내에 설치돼 있던 은행감독위원회(은감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1998년 은감위는 금감원으로 통합되기 전 과도기적으로 인사권과 예산권을 보장받으며 독립적으로 운영됐습니다. 한국은행은 은감위를 금감원으로 떼어내는 방안에 반대했지만, 대신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정부는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떼내어 기획재정부로 통합하고, 금소원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금융감독 기능과 금융정책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의미인데요. 금융위는 사실상 해체되고 남은 조직 일부는 재편된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사무처' 조직으로서 금융감독 기능을 맡는 식입니다.
특히 금감원 내 금소처를 금소원으로 떼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신설이 확정된 금소원의 역할과 권한을 어디까지 확대할 지가 관건입니다. 금소원 운영에 대한 논의 중 대표적인 두 방안은 이른바 '소봉형'과 '쌍봉형'입니다. 소봉형은 금감위 내에 금융사 건전성을 관리 감독하는 금감원과 소비자 보호 담당인 금소원을 두는 형태입니다.
쌍봉형은 금소원을 아예 독립해 더 큰 조직으로 키우는 방안입니다. 금감위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금소위)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독립적으로 설치하는 내용입니다. 금융감독 중 건전성에 대한 감독은 금감위와 금감원이, 영업 행위와 자본시장에 대한 감독 등 행위 규제 업무 전체는 금소위와 금소원이 맡는 식입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쌍봉형과 소봉형 두 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금감원에 금융감독과 진행기능을 일원화해야 하는데, 금소처 분리는 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금소처를 현재와 같이 금감원 내 두고 기능적 독립기구로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비관료 출신이자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금감원장이 금감원 조직 이해관계에 따라 금소처 분리에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내부 출신이 아닌 데다 금융 관료가 아닌 이 원장으로서는 관가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의 빚이 없다"며 "금소처 인사·예산권 독립 논의는 단순한 내부 개편을 넘어 금융감독 체계 전반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금감원장이 금감위원장을 겸임하고, 금감원장이 사실상 감독 규정 제정권까지 확보하는 시나리오를 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위로부터 금융감독과 검사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지만, 세부 규정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은 제한적입니다.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하던 과거에는 실질적인 감독 규정 제정권이 금감원에 있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 출범 후에는 금감원이 상위 기관인 금융위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의결기관인 금융위가 규정 제정권을 행사한 바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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