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반대했던 중국, 결국은…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북·중 정상회담에서 처음 비핵화 뺐다
2025-09-09 06:00:00 2025-09-09 06:00:00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일성에게 중국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 열사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고 했다. 중·일 전쟁 시기 중국공산당(중공)의 항일전에 조선인들의 공적을 확인하는 발언이다. 대표적으로 1935년에 중국 공산당이 만주에서 조직한 동북항일연군은 중국인과 조선인의 연합부대였다. 이홍광, 허형식, 황옥청, 마덕산을 비롯해 다수의 조선인 지휘관이 있었고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 최용건 등도 그 일원이었다. 국·공 내전 시기 중공군에도 조선인들이 대규모로 참여했다. 한국전쟁을 앞두고 조선인 병사들을 귀국시켜달라는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 편성된 규모가 3개 사단에 달할 정도였다. 
 
지난 3일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해 톈안먼 망루에 올라가는 북·중·러 등 참가국 정상들. (사진=뉴시스)
 
국·공 내전기 만주 중공군에…북한, '든든한 후방 기지'
 
국·공 내전이 치열했던 1946~1947년, 만주에서 국민당에 밀리던 중공군에게 압록강 너머 북한은 든든한 후방 기지였다. 수만의 중공군과 그 가족이 북한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휴식한 뒤 재투입됐다. 수십만 톤 전쟁물자도 북한 경내로 이동해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일본군이 남기고 간 소총과 탄약, 폭약을 대거 중공군에게 지원했다. 북한 정권도, 자체 군도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를 감수한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최대 10만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물론이고 그 후손 지도자들은 중국 방문 때마다 이례적인 환대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 중국과 소련(러시아) 사이에서, 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시계추 외교'를 능란하게 펼쳐온 북한의 외교술과 함께 이처럼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혈맹'이라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은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홍위병들의 김일성 비판, 중국의 개혁·개방, 북한의 세습 문제, 한·중 수교 등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때로는 대단히 격렬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각별한 관계'였다. 사문화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을 담은 북·중 우호조약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다. 
 
이런 양국 관계에서도 냉전 해체기부터 본격화한 북한의 핵 개발은 최대 골칫거리였다. 
 
1964년 10월16일에 중국이 첫 핵실험에 성공한 직후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핵 개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거절했다. "중국은 인구도 많고, 국가도 크다. 체면이 필요하다. 그래서 핵 개발을 했다. 조선(북한)이 거기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이 핵 개발하는 데 20억달러가 들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해 여름 도쿄올림픽 개최 비용은 28억달러) 북한이 감당하기에는 거액이라는 얘기였다. 김일성은 1974년에 재차 요청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마오쩌둥 등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핵 개발이 남한은 물론이고 일본, 대만을 자극해 핵 도미노 사태를 일으키고, 미국을 자극해 동북아 개입을 확대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반대 입장은 이후 1990년대 북한이 공개적으로 핵 개발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대응에 일관되게 나타났다.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 때 중국은 북한이 "제멋대로" 핵실험을 감행했다고 비판하면서 "확고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12년 말에 시진핑이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공식 등극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2016~2017년에는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에 중국이 동참하자 북한이 중국을 명시해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사회주의를 배신한 중국의 압박 책동을 핵 폭풍의 위력으로 단호히 짓부셔버리자"는 제목의 당 간부 교육용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1월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직접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시진핑, 5차 북·중 회담까지는 '비핵화' 빼놓지 않고 언급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석 달 앞두고 김정은과 처음 만난 시진핑은 "조선(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4개월 뒤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5차 정상회담을 할 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했다. 
 
그런데 지난 4일 베이징에서 한 북·중 정상회담 결과 발표에서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조선(북한)과 협력을 강화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는 말만 했다. 그는 또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중·조(북·중) 전통적 우호를 매우 중시하며 양국 관계를 잘 유지하고 공고히 하며 발전시키기를 원한다"며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이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핵문제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바뀌어도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를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을 '한반도 3원칙'으로 제시해왔으나 몇 년 전부터 '비핵화' 언급은 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해왔다. 시진핑의 4일 발언은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해 6월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전후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갖췄다"고 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 장관은 "조선(북한)에 적용되는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모든 의미를 잃었다. 종결된 문제(closed issue)로 보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지난 3일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66년 만에 중국, 러시아 최고지도자와 함께 톈안먼 망루에 섰다. 북한이 45년 만에 중국 초청으로 러시아는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비서방권 26개 국가들이 모인 대형 다자 외교에 재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자리는 사실상 주요 2개국(G2) 중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무대였다. 
 
러시아, 중국 사실상 북한 핵 보유 인정
 
러시아에 이어 중국이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북한 핵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 당장 유엔의 대북 제재가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해 3월에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감시 전문가 패널이, 러시아의 임기 연장 결의안 반대로 사라졌다. 또 중·러의 지지를 확보한 북한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화 제의에 비핵 핵보유국끼리의 핵군축을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할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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