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교실이고, 문제가 학습 단위인 미네르바 대학. (자료=Minerva University)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고등교육의 상수였던 ‘강의-과목’ 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지역 전략산업과 엮인 혁신 포트폴리오, 미네르바는 도시 순환과 100% 능동 학습, 올린공대는 프로젝트 선행, 올보르는 PBL의 제도화, 트벤터는 모듈형 학기(TOM)로 교육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이들은 ‘수업 기법’ 수준의 미세조정이 아니라 운영 체계 전환으로 성과를 입증했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ASU, “혁신 포트폴리오”로 확장과 질을 동시에
애리조나주립대는 온라인(ASU Online)·산학 협력·지역 혁신센터를 묶는 혁신 포트폴리오로 대학의 경계를 교정 밖으로 넓혔습니다. 지역(피닉스 밸리)의 첨단 제조 클러스터 확대와 맞물려, 대학-산업-정부의 ‘3자 공진’ 모델을 실현했습니다. 반도체 거점화에 맞춰 TSMC-ASU 파트너십을 맺고, 재직·예비 인력을 위한 스킬 교육과 연구 협력을 상시화했습니다. 공동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학생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는 등 협력을 넘어선 공동 운영 체계를 갖췄습니다. 이 같은 ‘산업-대학-도시’ 삼각 동기화는 US 뉴스 &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의 2026년 대학 평가(2026 ‘Best Colleges’ rankings)에서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1년 연속 1위라는 결과로 검증됐습니다. 대학 공식 발표 자료들은 “포용·접근·규모의 혁신”을 근거로 들며, 반도체 인프라 확충과 연계된 지역 효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의계획서가 아니라 지역 전략산업 로드맵이 커리큘럼을 견인합니다.
미네르바, 고정 캠퍼스 대신 ‘도시 순환’ + 100% 능동 학습
미네르바는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울 등 7개 도시를 순환 거주하며, 자체 플랫폼 '포럼(Forum)'으로 100% 액티브 러닝을 구현합니다. 전통 강의는 사라지고 실시간 토론·피드백·성과물 평가가 표준화됩니다. 미네르바 대학은 WURI의 '세계 100대 혁신대학(Global Top 100 Innovative Universities)'에서 4년 연속 세계 1위(2022~2025)를 기록했는데, ‘도시 기반 문제해결’과 ‘데이터 기반 역량추적’을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부터 도전적입니다. ‘위치 기반 과제(Location-Based Assignments)’에서는 “도쿄의 기술 정책을 분석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과도기적 정의를 조사하거나, 베를린의 도시 인프라를 재설계하세요”라고, ‘시민 프로젝트(Civic Projects)’에서는 “시급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유명 기업, 비영리 단체, 정부 기관 및 스타트업과 협력하세요”라고, ‘글로벌 랩(Global Labs)’에서는 “실제 이해관계자와 함께 솔루션을 설계, 테스트, 반복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에 몰입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이 대학은 도시가 교실이고, 강의가 아닌 문제가 학습 단위입니다.
올린공과대학, ‘이론-실습’ 순서를 뒤집다
올린은 개교 초부터 프로젝트 먼저, 이론은 그 다음을 선언했습니다. 1학년부터 팀 단위 제품개발에 뛰어들고, 4학년 연중 캡스톤(SCOPE)은 기업이 의뢰한 실제 난제를 다룹니다. 그 결과, 학부 공학(비(非)박사) 분야 미 전국 상위권을 장기간 유지하며 ‘작지만 강한’ 모델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공학계 전문지 <IEEE 스펙트럼(IEEE Spectrum)>은 “전통의 ‘이론 먼저’를 뒤집는 올린 실험(Olin Experiment)”이라고 평가했고, 스폰서 리스트에는 아마존 로보틱스·보스턴사이언티픽·뉴발란스 등 실전 과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목’이 아니라 산업형 과제가 커리큘럼의 최소 단위가 되었습니다.
올보르대, PBL을 ‘수업 기법’이 아니라 ‘거버넌스’로
덴마크 올보르대는 학과·전공을 가리지 않고 문제기반학습(Problem Based Learning, PBL)을 운영 원리로 제도화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위 전 기간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문제 정의→해결 설계를 반복합니다. 이 모델은 유네스코 산하 ‘올보르(Aalborg) PBL 센터좌’(UNESCO 관할 카테고리2 센터)로 공인되어 운영 중인데, 이 센터는 2013년 출범했고, 2019년 연장에 이어 2025년 다시 2033년까지 연장됐습니다. 올보르대에서 모든 것은 ‘문제 해결 중심’으로 동기화되어야 합니다. PBL은 교수법이 아니라 대학 운영 시스템입니다.
트벤터대, 모듈형 학기(TOM)로 ‘T 자형 인재’ 양성
트벤터는 학부 전 과정에 TOM(Twente Educational Model)을 적용, 한 학기=모듈(15ECTS)로 묶어 전공·교양·프로젝트를 통합합니다. 각 모듈은 팀 기반 현실 과제를 중심으로 설계되며, 대학은 이를 “프로젝트 기반·학생주도·T-자형 역량”으로 규정합니다. 네덜란드 공학 교육 컨소시엄 4TU는 TOM을 ‘변혁적 혁신(transformational innovation)’이라고 평가합니다. 서비스 포털과 학과 안내는 ‘사회·비즈니스의 실제 문제’로 모듈을 끝맺는 구조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학사 운영의 최소 단위를 과목에서 모듈로 바꾸면서 교수진 협업과 학생 설계권이 동시에 커진 것입니다.
애리조나주립대부터 트벤터대까지 다섯 대학들이 던지는 혁신 메시지는 발상법의 대전환입니다. 강의가 아니라 문제, 교실이 아니라 도시, 과목이 아니라 모듈, 학습이 아니라 실행입니다. 대학 혁신의 답을 학교 안에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찾고 운영 체계를 완전히 바꾼 이들의 움직임은 우리의 대학 혁신 논의와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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