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한 진영 논리가 지운 보편적 인권
…' 이재명 대통령이 지핀 이스라엘 논쟁의 본질은 그릇된 식민사관에 저당 잡힌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친미부터 친일까지, 짧게는 해방 이후부터 길게는 구한말까지 우리 비극을 정당화한 식민사관의 망령이다. 강대국의 침략은 찰나지만, 재건의 과정은 끝없는 고난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 정신적으로는 사상의 제약. 강자가 짓밟은 상처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다. 몇 번을 굽어도 험한 물줄기는 제자리다. 우리의 사상이 1950년 6월25일, 그날 멈춘 것처럼.
대통령 '사법 리스크'까지 재소환
때아닌 이스라엘이 한국 정치를 파고들었다. 시작은 이 대통령이 엑스(구 트위터)에 올린 영상과 글. 그는 이스라엘 병사가 팔레스타인 아동을 지붕에 떨어뜨렸다는 취지의 영상을 공유하며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즉각 논란을 불렀다. 해당 영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한창인 2024년 9월 서안지구에서 촬영됐다. 미국·이란 전쟁과 무관. 아동 학대와도 관련 없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군 시신을 처리하는 영상이다. 다만 그 대상이 아동이든 군인이든 제네바 협약 위반.
이스라엘 외무부는 즉각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외교에서 규탄은 '우려·개탄'을 넘는 가장 수위 높은 수사다. 이강근 이스라엘 한인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스라엘 법원이 비상사태 종료일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재판 재개를 통보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 대통령도 재판받으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보편적 인권 결여 문제가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까지 전선을 넓힌 셈이다.
야권 인사들도 가세했다. 비판은 제각각. '이 대통령의 갈라치기'(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부터 '가짜뉴스·음모론자'(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비판까지. 급기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전쟁범죄는 불관용'이라는 인류 문명사의 대원칙을 언급했을 뿐인데, 무엇을 사과하라는 말인가. 그것도 전쟁 국가인 이스라엘 정부에.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되레 늦었다. 만시지탄이다. 세계 10대 강국임에도 그간 우리는 국제사회의 불법 침략과 반인도범죄에 침묵했다. 특히 뒷배에 미국이 있는 반인권적·반인륜적 행위는 애써 외면했다. 이스라엘이 대표적. 미국·이란 전쟁 역시 네타냐후 총리의 달콤한 속삭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습 버튼을 누른 게 아닌가. 더구나 네타냐후 총리는 2024년 9월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가자 지역 학살 혐의를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자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불법 침공 사태는 전례 없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입꾹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수없이 자행한 전쟁범죄에도 눈감았다. 이유는 단 하나. 미국 눈치 보기.
한마디로 '친미·친이스라엘' 가라사대다. 지금도 트럼프 미국 행정부 내 마가 세력이 '친이스라엘'이라며 이 대통령의 행위를 '반미·반이스라엘'로 규정하는 보수 진영 인사들이 얼마나 많나.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 문제를 한·미 간 문제로 치환, 약소국의 콤플렉스를 스스로 강요한다.
딜레마다. 친미에서 이탈하는 순간,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낙오될까 두려워 침묵을 자처했다. 그 결과는 한·미·일 동맹 내 불평등한 관계. 그리고 한반도의 종속적 위치. 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택한 친미 사관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든 약소국의 운명.
일종의 주홍글씨처럼 강요된 침묵이다. 가짜뉴스 업로드 논란에도 결과적으로 침묵을 깼다. 남은 과제는 지긋지긋한 식민사관의 꼬리표 떼기. 이 꼬리표엔 마가를 신격화하는 힘의 숭배 의식이 판친다. 해방 이후 친미·반미 등의 진영 논리로 인해 보편적 인권을 지운 것도, 미국이 개입한 반인도범죄에 눈감은 것도 이 때문.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타협할 수 없는 제1 가치. 사사건건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는 이스라엘 행태는 보편적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홀로코스트도, 위안부 강제동원도 더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의 인권유린, 중국 신장 위구르족 인권탄압 문제도 마찬가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현실 앞에 침묵하는 자도 공범이다.
최신형 정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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