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은행권이 금리인하요구권 실적을 내세우며 소비자 부담 완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간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 확대로 벌어들인 이자이익에 비해 금리인하요구 수용에 따른 이자감면액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은행들이 금리 인하기에도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해 소비자 이자 부담을 전가하면서 '생색내기'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은행권 1위' 눈살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이 상반기 금리인하요구권 실적을 공시한 가운데 신청 건수 대비 수용건수 비율(수용률)이 50%를 넘는 곳은 전무한 곳으로 나타났습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개인·기업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은 뒤 취업이나 승진, 매출액 증가 등으로 인해 신용 상태 및 상환 능력이 개선될 경우 금융사를 대상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가운데 가계대출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은 NH농협은행(42.9%)·신한은행(35.4%)·하나은행(31.0%)·KB국민은행(26.2%), 우리은행(17.7%) 순으로 높았습니다. 금리인하 요구 수용을 통한 가계대출 이자감면액 기준으로는 신한은행(57억원)이 1위였습니다. 이어 하나은행(35억원)·우리은행(32억원)·KB국민은행(26억원)·NH농협은행(12억원) 순이었습니다.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이 100%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고객들의 신청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기본적으로 시중은행 대비 신청 건수가 많은 데다 5배 이상에 달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상반기
카카오뱅크(323410)에 신청된 금리인하 요구는 가계대출 기준 63만536건인데, 이 중 36.8%에 달하는 23만1858건을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자감면액은 87억원에 달합니다. 이 밖에 토스뱅크는 15만1506건 중 24.0%에 달하는 3만6367건을 수용했으며, 케이뱅크는 13만5472건 가운데 10%에 불과한 1만3596건(23억원)을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 실적이 엇갈리는 가운데 수용률과 이자감면액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은행들은 대대적으로 실적을 홍보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2017년 출범 이후 기준으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수용 건수와 이자감면액이 가계대출 기준 금융권 1위"라며 "금융권 우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신한은행도 "5대 은행 중 금리인하요구권 수용 실적 1위"라고 강조하며 "실적 공시 이래 누적 수용 건수 규모는 공시 대상 19개 은행 가운데 최고"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2020년 당시 은행장이었던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금리인하요구권 제도의 고객 접근성과 편의성을 대폭 개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리인하요권 수용 실적이 좋은 은행들이 너도 나도 '은행권 1위'를 주장하고 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를 찾은 시민이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리인하 요구 신청 절반 거절
다만 그간 은행들의 막대한 이자이익에 비하면 금리인하 요구 수용을 통한 이자감면액이 초라한 수준입니다. 카카오뱅크의 올 상반기 대출이자수익이 1조원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자감면액은 0.8%에 불과합니다. 신한은행의 상반기 이자부문이익은 4조4652억원인데, 이자이익 대비 이자감면액은 0.1% 수준입니다.
기준금리 인하기에도 대다수 금융소비자들이 대출금리 인하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금리인하 요구 실적 최고'라는 자평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권의 예대금리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대금리차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은행권의 주된 수익원으로 꼽힙니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은행의 이자이익도 많아지는 셈입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 속에 시중금리는 낮아졌지만, 예금금리 인하는 빠르게 반영된 반면 대출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대 은행에서 취급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지난 7월 기준 1.47%p입니다. 예대금리차는 대체로 지난해 8월 이후 올해 3월까지 줄곧 커지다가 이후 소폭 축소됐는데요. 하지만 지난 5월 기점으로 다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정부가 6·27 부동산 대책 일환으로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금리 내리기 어렵게 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두면서 진의를 의심받고 있습니다.
또한 금리인하요구권 실적 공시와 수용률 개선세는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업권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 데다 타 업권에 비해서도 저조하기 때문입니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 조건을 표준화해 일정 신용 수준을 충족하면 의무적으로 금리인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권이 진정으로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려면 수십억원 단위의 감면 실적을 자랑할 게 아니라 예대금리차 축소와 합리적 금리 산정 구조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은행권이 상반기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을 공시한 가운데 신청 건수 대비 수용 건수 비율이 50%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상담받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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