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각종 비리 등 농협의 고질적 병폐가 이어지는 건 중앙회장의 제왕적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의 농협에 대한 특별 감사에서는 농협중앙회장부터 조합 단위까지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예산과 사업비, 출연금 등이 사실상 '눈먼 돈'처럼 운영돼온 총체적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정부와 국회 차원의 압박이 이어지고 농협중앙회까지 자체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지만, 그간 공공연하게 알려지거나 지속적으로 지적된 문제인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장기집권 제한' 매번 실패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농협 비리와 관련된 대책을 주문한 데 이어 국회에서도 농협 비리에 대한 쇄신 요구가 커지면서 농협 개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지난달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농협 문제를 직접 거론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농협은 진짜 문제다. 선거 과정에 불법도 많고 구속되고 수사하고 난리더라"면서 "필요한 것은 수사를 의뢰하고 감사를 철저히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농협 개혁의 핵심은 중앙회장의 과도한 권한과 비상임조합장 등 장기 집권 제한입니다. 매번 농협 개혁의 핵심 과제로 지목되는 사안이지만 국회 차원의 농협법 개정과 정부 차원의 개혁은 정치적 이슈와 지역 이권자의 표심에 눈치보느라 미뤄져왔습니다.
농협은 농민을 주주로 208만명의 조합원 수로 구성된 협동조합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협동조합이 아닌 농협중앙회를 정점으로 은행, 증권사, 언론사까지 거느린 거대한 조직입니다. 지배구조는 조합원→지역 농·축협→농협중앙회→금융·경제 지주회사→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농협의 최고 권력은 농협중앙회입니다. 지난 2012년 신용(금융)과 경제 사업 분야를 분리(신경 분리)한 이후 중앙회 산하 2개의 지주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배구조의 정점에서 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의 지분을 각각 100% 소유하며, 계열사 28곳을 거느리며 그룹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장 임기는 4년 단임제에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중앙회 산하 계열사 대표 인사권과 예산권·감사권을 갖고 농업경제와 금융사업 등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장이 교체 될 때마다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 등이 사표를 일괄 제출하고 재신임을 묻는 과정을 밟아야 하기도 합니다. 각 계열사에 회장 선거때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내려오면서 '보은 인사'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농림식품부 농협 감사에서는 중앙회의 과도한 권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이사회는 막대한 돈을 챙기며 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비상임 이사와 감사, 조합감사위원에게는 활동 내용 확인 없이 정기적으로 수당이 지급됐고, 특별 성과보수 명목으로 억 단위의 금액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협 개혁은 또 다른 핵심은 비상임조합장 장기 집권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현재 농협 조합장은 상임조합장과 비상임조합장으로 구분되는데 현행 농협법에 따르면 조합장의 임기는 4년입니다. 상임인 경우 조합장은 두 차례 연임할 수 있어서 최장 12년 동안 재임할 수 있습니다. 반면 비상임조합장은 연임에 제한이 없습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13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단상을 떠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체 개혁 한계…법제도 바꿔야
이렇다 보니 비상임조합장 10명 중 2명이 4선 이상이고, 최다선 조합장은 10선 이상에 이릅니다. 2선 이상 조합장들이 비상임조합장 제도를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조직도상으로는 비상임조합장이 임원들의 의사 수렴이나 대외 교류·복지후생 정도를 맡고, 상임이사가 농산물 유통·판매부터 금융사업과 관련한 실질적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구분돼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상임조합장도 상임조합장과 마찬가지로 지역 조합의 대표권자로서 직원 임면권 행사 등을 통해 조합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상임조합장과 권한 행사에 있어 차이가 없는 데다 연임 제한조차 없어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조합장들이 장기 집권하면서 곳곳에서 직장 내 괴롭힘, 횡령, 특혜성 대출 등 각종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비상임조합장 등이 막대한 권력을 누린 가운데 농협중앙회는 그간 자체 개혁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중앙회장 조합장 직선제로 바뀐 이후 회장 후보들이 조합장 표심을 얻기 위해 이들의 권력을 보장하는 등 구태 공약을 들고 나오는 등의 반복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농협법 개정안이 2년 7개월 만에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어 법사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비상임조합장 연임 가능 횟수를 최대 2회로 제한하고 지역 농협 외부회계감사 주기 단축,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법이 통과되더라도 3선 이상 재임 중인 조합장들이 다음 선거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여러 차례 연임을 한 상태라도, 법 개정 시점을 최초 임기로 보고 앞으로 두 번 더 연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협중앙회도 이날 농협 감사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학계, 농민단체 등에서 외부위원을 구성해 '농협혁신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농협혁신위원회에선 중앙회장 선출 방식, 중앙회장의 역할과 책임 범위, 당연직 운영 개선 방안, 지역 농축협 조합장·임원 선거제도 개선 방안 및 감사위원·조합감사위원을 임명하는 별도 추천위원회 구성까지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와 단위조합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제왕적 권력에 있다는 게 공통적 의견"이라며 "자체 개혁에 기대기는 어렵고 현재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농협 개혁법이 근본 취지에 맞게 신속히 본회의를 통과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농협중앙회가 조직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손보기 위해 외부 전문가 중심의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배구조와 선거제도 등 구조개혁에 착수하기로 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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