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철퇴에…설 자리 잃은 실손간편청구 핀테크
2026-05-14 14:47:13 2026-05-14 15:42:28
[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금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플랫폼 '실손24' 활성화에 나선 가운데 핀테크 기업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위는 실손24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의무기록(EMR) 업체 등의 담합 행위를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금융당국이 정부 주도 플랫폼 중심으로 시장 재편에 나서면서 핀테크 생태계가 외면받고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금융위 "실손24 미참여 담합 의심"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해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제도를 추진하며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실손24를 중심으로 서비스 확대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존 민간 인프라에 대한 연착륙 방안 없이 단일 플랫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던 핀테크사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소비자가 병원에서 직접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하지 않아도 계산서·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서, 처방전 등 전자서류를 보험사에 전달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입니다.
 
문제는 금융당국 주도로 추진되고 보험사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실손24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급변한 것입니다. 보험사들이 실손24 체계에서는 별도 건당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존 민간업체들과 계약을 종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업계는 보험사의 일방적 계약 해지가 사실상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험사와 계약이 끊기면 민간 간편청구업체 입장에서는 기존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당국의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실손24의 참여도는 여전히 저조합니다. 연계 의료기관 수 기준으로 연계율은 29%에 불과합니다. 금융위는 올 하반기까지 80~90%로 높이겠다는 방침인데요. 급기에 실손24에 참여하지 않는 EMR 업체들을 대상으로 불공정 관행에 대한 집단 점검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금융위가 EMR 업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의원급 병·의원은 기존에 쓰는 EMR 프로그램이 실손24와 연결돼야 실손 청구 간소화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MR 업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은 병원마다 진료 방식과 시스템 환경이 모두 달라 EMR 연동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정형외과·한의원·성형외과 등 진료과별로 사용하는 항목과 시스템 구조도 다르기도 합니다.
 
EMR 업체들이 기존 민간 서비스 체계 안에서 유지보수와 시스템 대응 업무를 맡아 수수료 등 일정 수익을 얻고 있었는데요. 실손24 체계에서는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참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EMR 업체들이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공공 인프라(실손24)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며 "EMR 업체들은 병원별 시스템 환경에 맞춰 유지보수와 오류 대응 업무를 계속 수행해야 하는데, 압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실손24' 활성화에 나서면서 기존 민간 실손보험 간편청구업계와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다. 사진은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손해보험협회에서 열린 '실손 24 대국민 활성화를 위한 관계부처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금융위)
 
민간 핀테크 공존 약속 '허언'
 
실손24가 출범하기 전부터 실손 간편청구 서비스를 시작한 민간기업들은 정부가 실손24 성과를 위해 민간 생태계 활성화는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과거에는 핀테크 활용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입자이었다가 실손24 중심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금융위는 지난 2018년부터 소비자의 권리인 보험금 청구를 손쉽게 돕고 보험사의 효율성도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보험사와 핀테크 업체 간의 협업을 장려해 왔습니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인슈테크 혁신이 보험사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혁신기술 투자, 핀테크 업체들과의 협업 등 노력을 당부한다"고도 했습니다.
 
금융위는 2024년 1월 보건복지부·의약계·보험업계 등과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 회의'에서는 "핀테크를 활용한 실손 청구 방식과의 연계 방안 등에 대해 협의해 나가겠다"고도 언급했습니다. 같은 해 2월 보험개발원을 실손24 전송 대행기관으로 지정하면서도 "일부 병원에서 시행 중인 핀테크를 활용한 실손보험 청구 방식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금융위와 보험개발원 등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뚜렷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험개발원과 협의 과정에서는 유지보수 비용과 보안 요건 등을 두고 이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존 민간 시장의 연착륙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필요한 제도"라면서도 "기존 민간 인프라와 충돌 없이 안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는 소비자 편익 확대를 위해 의료기관과 의료데이터가공업체(EMR)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민간업계는 정부가 사실상 특정 플랫폼 중심으로 시장 재편에 나서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실손24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실손24)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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