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굽은 산길 끝엔 노란색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주변은 온통 산과 밭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1시간30분을 달려야 하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도 30분 넘게 차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곳. 인천 강화군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은 그렇게 외딴 곳에 있었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평소라면 조용했을 시설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색동원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엄기표 부장판사)가 이날 직접 강화도를 방문해 현장검증에 나선 겁니다. 재판부가 검은색 법복과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선 직접 사건 현장을 찾는 건 이례적입니다.
앞서 색동원 시설장 김씨는 발달장애 여성 입소자들을 상대로 성폭력과 학대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그런데 김씨 측은 지난달 24일 이 사건 첫 공판에서 “시설 구조상 성폭행이 불가능하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시설구조와 동선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해당 재판부는 장애가 있는 피고인이나 피해자가 포함된 사건을 전담하기 위해 2024년 신설된 ‘장애인 전담재판부’이기도 합니다.
이날 현장검증엔 법원 관계자와 검찰, 피해자 측과 피고인 측 변호인, 수사를 담당한 경찰,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까지 시설 앞에 모였습니다. 피고인 김씨는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색동원 사건 재판장인 엄기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부장판사가 지난15일 오후 인천 강화군 색동원에서 시설장의 입소자 성폭행 혐의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현장검증에는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인 색동원 시설장 김 모 씨 측과 피해자 측 대리인 등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피고인 “CCTV 많아 범행 불가능” vs 검찰 “관리 주최가 원장”
현장검증은 피해자 진술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시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외벽과 복도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했습니다. CCTV는 복도와 출입구, 공용공간 등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김씨 측은 그간 “시설 내에는 총 32대의 CCTV가 설치됐고, 야간 근무자가 입소자 동선을 수시로 확인한다”며 “시설 안에서의 범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반면, 검찰과 피해자 측은 “CCTV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관리 주최가 원장이기 때문에 몇대가 있든지 간에 (범행을 벌이는 데는) 상관이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김씨 측은 앞선 공판에서 피해자가 머물던 201호 구조를 설명하며 “피해자는 공용화장실을 가다 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방 안에도 화장실이 있어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방 밖으로 나갈 경우 야간 당직자가 이를 바로 볼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검찰과 피해자 측은 “화장실 비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서도 공용화장실을 사용한 경위를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재판부는 야간 당직자의 근무 의자에 직접 앉아 사각지대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색동원 사건 재판장인 엄기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부장판사가 지난15일 오후 인천 강화군 색동원에서 시설장의 입소자 성폭행 혐의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하며 유리컵이 숨겨진 장소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후 재판부는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피해자가 성폭행에 저항했더니 김씨가 머리를 향해 유리컵을 던졌다고 진술한 장소였습니다.
재판부는 현장검증에 동행한 경찰을 향해 “유리컵이 발견됐느냐”라고 묻자, 경찰은 “시설 측은 장애인 안전 문제로 유리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지난해 압수수색 당시 실제 유리컵이 발견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유리컵이 보관됐던 장소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했고, 3층에 있는 남성 생활관도 살폈습니다. 여성 입소자들이 거주하는 2층에서의 소음이 위층까지 전달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장을 검증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색동원 사건 재판장인 엄기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부장판사가 지난15일 오후 인천 강화군 색동원에서 시설장의 입소자 성폭행 혐의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하며 CCTV 사각지대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공대위 “폐쇄적 구조 안에서 권력 집중…성폭력 위험도 커져”
현장검증에 앞서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색동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설의 폐쇄적 구조를 비판했습니다. 시설 입소자들의 생활은 기상과 식사, 외출, 통화까지 대부분 시설 운영 체계 안에서 이뤄집니다. 특히 발달장애 입소자들은 목욕과 옷 갈아입기, 취침 준비 등 일상 전반에서 종사자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공대위는 “시설장은 입소자들의 생활 동선과 정보 접근, 외부 접촉을 사실상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폐쇄적 구조 안에서 권력이 집중되면 폭행과 성폭력 위험 역시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색동원 입소자 상당수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였던 탓에 피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지도 못했습니다. 공동대위는 “이번 사건이 세상 밖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피해자 중 한 명이 퇴소 후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시설 안에선 피해를 호소·신고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구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엄 부장판사는 검증을 마친 뒤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했다”며 “피해자의 의사와 진술 내용이 재판 과정에 어떻게 잘 반영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오는 18일 공판을 열고 피해자들의 영상 진술 녹화물을 확인하고 진술 분석관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인천 강화=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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