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 업무에서 AI가 가져온 변화는 이미 상당하다. 변호사가 서면 초안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고, 판례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변호사가 할 일이 없어지거나 덜 바빠진 것도 아니다. AI가 작성한 결과물을 검수하고, 사실관계나 법리를 잘못 이해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그럴듯하지만 지나친 주장은 걸러야 한다. 검토된 수많은 사실과 주장 가운데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버릴지도 결정해야 한다. 열 페이지의 서면을 만드는 것보다 그 열 페이지를 읽은 사람에게 확실한 하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AI를 많이 쓸수록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더 분명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 서비스 시장에서 ‘규모’는 그 자체로 상당한 경쟁력이었다. 여러 사람이 자료를 검토하고 판례를 찾고 초안을 작성한 뒤 다시 검토할 수 있는 ‘조직’에 비해 한 명의 전문가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는 어려웠다.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투입 인원과 시간의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는 이 차이를 조금씩 흔들고 있다.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크게 늘었음에도, 과거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했던 작업의 상당 부분을 개인도 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하고 규모가 큰 업무에서는 여전히 여러 전문가의 협업과 조직의 경험이 중요하다. 다만 ‘많은 사람이 있어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공식은 이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이 모습은 유튜브의 등장이 초래한 언론 시장의 지형 변화와도 닮은 측면이 있다. 과거에는 방송국이나 신문사처럼 제작 시설과 유통망을 갖춘 조직이 아니면 수많은 사람에게 콘텐츠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개인도 거대한 미디어와 경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개인의 콘텐츠가 비슷한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제작과 유통의 장벽이 낮아지자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른 개인의 차이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AI가 전문직에 가져오는 변화도 비슷하다. 모두가 비슷한 도구를 쓰면 전문가들의 능력도 비슷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에 가깝다. 기초 조사와 초안 작성이 쉬워질수록 전문가 개인의 역량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엇을 질문할지, 어디까지 믿고 어디에서 의심할지, 무엇을 선택하고 강조할지에 대한 판단의 중요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AI는 전문가의 역량을 대신하기보다는 그 역량을 증폭시키는 도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문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가’나 ‘AI를 쓰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AI의 능력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가 될 것이다.
AI는 한 명의 전문가가 과거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전문가'가 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미지=챗GPT)
또한 이로써 사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AI 덕분에 자료를 찾고 문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줄었다면,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의뢰인에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연락에 더 빨리 답하고, 같은 문제라도 각자의 상황에 맞는 해결책에 시간을 더 쓸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AI가 대신할 일을 맡긴 뒤, 그렇게 확보한 시간과 능력을 어디에 쓸지에서 비롯한다.
AI는 조직의 크기가 개인의 한계를 결정하던 시대에서, 한 명의 전문가가 과거보다 훨씬 큰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로 이끌고 있다. AI가 조직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고, 조직이 가진 경험과 협업의 힘 역시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다만 과거에는 조직만이 가질 수 있었던 정보 처리 능력과 생산성의 일부를 이제 개인도 가질 수 있게 된 결과, 무게중심을 사람에게로 더 옮길 수도 있게 되었다. 그만큼 조직과 개인 사이에 존재했던 힘의 차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AI 시대를 살아가는 전문가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AI라는 새로운 힘을 얻은 지금, 당신은 어떤 특별함을 지닌 전문가가 될 것인가.’
신의철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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