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국가 '대못'…몰아치는 미국발 '청구서'
'상호관세·한미 FTA·방위비' 등 영향 불가피
탄핵 정국에 정상외교 실종…각종 협상 수세
2025-03-17 16:30:17 2025-03-17 19:18:09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미국 정부가 올해 1월 지정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 최하위 범주(기타 지정국가)에 한국이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거셉니다. 민감국가 지정 두 달이 지나도록 동맹국인 미 행정부에서 통보받지도, 사전에 관련 동향을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정부의 대외 리스크 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리더십 부재에 따른 '정상외교 공백'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이번 조치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 부문 협력, 통상 협상 등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당장 내달 초 시행 예정인 상호관세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당면한 현안 과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발 청구서가 몰아쳐도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해 미국과의 각종 협상이 녹록지 않을 전망입니다. 
 
AI부터 원전까지…한·미 협력 '제한' 
 
17일 미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한국은 올 초 미국의 SCL 중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에 포함됐습니다. DOE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언론 공지를 통해 "SCL에 지정된 국가들 중 다수는 에너지, 과학, 기술, 대테러 및 비확산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들"이라고 밝혔습니다.
 
DOE가 작년까지 민감국가로 지정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시리아, 이스라엘, 대만 등 25국이었습니다. 올 초 한국이 추가 지정되면서 미 에너지부 지정 민감국가는 26국으로 늘었습니다. DOE는 미국의 에너지와 원자력, 핵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부처로, 통상 국가·경제안보 위협,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테러리즘 등을 이유로 SCL을 지정합니다. 
 
민감국가로 지정된 국가의 국민은 DOE의 원자력, 핵무기 기술,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과 미국과의 연구 협력 및 기술 공유 등이 제한됩니다.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나 프로그램, 정보에 접근할 때도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이 DOE의 민감국가에 지정됨에 따라 원전, 핵 비확산 분야는 물론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테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미 간 연구·개발 협력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지정 '두 달간' 깜깜이…정부, 뒤늦은 대응에 '진땀'
 
문제는 민감국가 지정 파급력이 당면한 현안 과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한국에도 트럼프발 청구서가 몰아칠 예정인데요. 당장 다음 달 상호관세 시행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거센 요구가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미국은 오는 4월 세계 주요국을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먼저 실행한 뒤, 이를 지렛대 삼아 상대방을 압박해 자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양자 무역 질서를 재편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미 FTA도 사정권 안에 들어갔다는 관측입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준선을 재설정하고 이후 국가들과 잠재적인 양자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루비오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다음 달 2일부터 상호관세를 적용한 후 무역 상대국과 새로운 협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미 FTA를 체결한 한국도 이러한 변화에서 예외가 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정부 안팎에선 이번 정책 변화에 따라 한·미 FTA가 또 개정되거나, 기존 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민감국가 지정은 향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정부가 바이든정부 때의 조치를 그대로 시행할 경우, 상호 방위 영역은 물론 양국 간 동맹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인데요. 앞서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에 불만을 표시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한국 역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트럼프발 청구서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 미국과의 각종 협상에서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이미 민감국가 지정도 정부가 두 달여 동안 몰랐다는 점에서 리더십 부재에 정상외교 공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비판이 거센데요. 정부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협상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된 것과 관련해 "관계 기관들이 미국 측에 적극 설명해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며 "특히 산업부 장관이 이번 주 중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적극 협의해달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어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해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 측의 동향을 파악하고 미 측에 우리의 노력을 적극 설명하는 한편, 상호관세 대상 유력 업종 등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관계 부처가 함께 노력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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