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트럼프 2기, 한국 국방도 발상을 바꾸자
대외 군사개입 축소와 세계 차원 핵 군축 시동
미 국방비 8%씩 5년 감축 계획 의회 제출
트럼프가 핵 군축 추진하는 마당에 한국은 독자 핵무장?
남북한 긴장 완화 카드가 되레 탄력 얻을 가능성
2025-03-25 12:00:00 2025-03-25 13:56:18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 하며 J.D. 밴스 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이날 정상회담은 설전 끝에 파행으로 조기 종료됐다.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전략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 대응 방향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의 경찰관 노릇을 그만두고 미국 중심으로 새로운 실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트럼프 후보는 대외 군사 개입 확대를 옹호해온 미국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네오콘 이론가들을 '전쟁광'이라고 부르며 배격했죠. 글로벌리스트(국제 개입 확대론자)는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미국에 더 해롭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많은 곳에서 전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비용만 막대하게 썼죠. 그런 잘못된 일에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미국의 실익을 챙기자는 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의 중심적인 아이디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운동의 지도자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고,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돈을 광물 협정 등을 통해 회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유럽 방위는 유럽의 힘으로 하라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신에 그린란드와 캐나다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고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공언하고 있죠. 북미와 중남미 대륙 중심으로 미국 세력권을 확장하겠다는 건데요. 그린란드를 영유하고 있는 덴마크가 강하게 반발하지만,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그린란드 운명은 그린란드인들이 결정한다"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만약에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하는 데 성공하면 어떨까요? 트럼프 대통령한테 엄청난 성과가 되겠지요. 미국이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을 해도 성과가 신통치 않았던 점과 비교하면 트럼프 구상은 나름대로 합리적입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적 차원에서 핵 군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핵무기 숫자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성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그 위력은 엄청납니다…그리고 우리는 다른 국가들도 참여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규모는 더 작지만 김정은도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도 있고, 파키스탄도 있고, 핵무기를 보유한 다른 국가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도 (논의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을 말합니다. 핵 강대국인 '우리'와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다른 국가', '그들'을 모두 포함시켜 세계적 차원에서 핵 군축을 추진하자는 뜻입니다.
 
그동안 미국은 핵 강대국의 기득권적 지위는 언급하지 않고 북한, 이란 등의 핵 개발만 문제 삼았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미국의 태도에서 180도 달라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8일 전화 회담을 했습니다.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두 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과도 협력하기로 했다고 회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핵무기는 심각하게 위험하죠. 본인 구상처럼 글로벌 핵 군축에 성과를 낸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19일 경기 파주시 도시작전지역 훈련장에서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스트라이커 여단 장병들이 자유의 방패(프리덤 실드) 일환으로 열린 한미 연합 도시지역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셋째, 미국은 안보 비용 절감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앞으로 5년간 매해 국방비를 8%씩 감축하는 계획을 세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 국방비는 현재 약 8500억달러인데요. 미국 한 나라의 국방비가 세계 모든 나라 국방비 합계의 40%에 이를 정도로 미 국방비는 규모가 엄청납니다.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해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온 미국이, 이제 국방비를 줄이겠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1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황이 정리되면 내가 처음 하고 싶은 회담은 중국, 러시아와 핵무기를 감축하고 무기에 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회의"라며 "나는 군사비를 반으로 줄이자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세 가지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미국이 재정을 무한히 쏟아부으면서 세계 경찰국가 노릇을 하던 시대와 선을 긋겠다는 겁니다. 미국 국력이 쇠퇴해 세계 여러 문제에 개입하기 어려운 사정을 솔직히 인정하는 겁니다.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요? 세계는 미국 일극 패권 체제가 아니라 여러 열강이 세력권을 형성하며 각축하는 다극화 시대로 재편될 것입니다.
 
한국 국방을 발전시키려면 트럼프 행정부 움직임을 읽고 대응 방향을 세우는 게 중요한데요. 첫째로, 비현실적인 독자 핵무장론을 자제해야 합니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비용과 위험 측면에서 원래 비현실적입니다. 미국이 용인할 가능성도 희박하죠.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세계적 차원에서 핵 군축을 추진해 업적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도 논의 테이블에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 가능성을 자주 언급하고, 북한을 '핵 국가(nuclear power)'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경계하며 '민감국가'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이런 정세를 직시하고 비현실적인 독자 핵무장론을 자제해야 합니다. 북한 위협은 한국군 재래식 무기와 미국 핵무기를 결합해 억제하면 됩니다. 산업 발전을 위해 평화적 원자력 이용 권리도 확대해야지요.
 
둘째로, 한미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불합리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적지 않은 보수 성향 이론가들이 언론 기고를 통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있다. 우리도 우크라이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한국이 쓸모를 입증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최우선적 위협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미 동맹 차원에서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자."
 
이것은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게 아니라, 안보를 더욱 어렵게 하는 발상입니다. 북한 위협에 덧붙여 위협 요인을 늘리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안보정책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는데요. 대중국 압박은 관세, 기술 통제 등 경제적 차원에 집중하고 군사적 긴장은 되레 낮출 가능성이 있습니다.(이강규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국방일보> 3월17일자 기고) 미 군함이 대만 해협을 일부러 통과해 보여주는 등의 대중국 시위를 늘릴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죠.
 
한미 동맹을 유지하겠다고, 한국군의 쓸모를 보여주겠다고 대중국 군사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다가, 트럼프 행정부와 엇박자가 날 수도 있습니다.
 
셋째, 남북 간 긴장을 낮출 군비 통제 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가능성을 거듭 비치고 있습니다.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구호를 외치며 북한을 상대로 긴장을 높여온 윤석열 정부 정책은 지금 정세와 맞지 않습니다. 지금은 남북한 긴장을 낮출 군비 통제 대화를 검토할 때입니다. 남북한 군사 직통전화를 되살리고 접경지역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9·19 군사합의 복원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죠. 이 방향에 미국과 북한이 모두 호응해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안보 구상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세를 정확히 읽고 우리 대응 방향을 세워야 합니다.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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