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영남권 산불이 좀처럼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 산청·하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닷새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계속되면서 산불은 안동과 청송을 거쳐 영덕까지 번졌습니다. 산불진화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충분한 안전 장비와 교육 없이 투입돼 생사 고비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2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성묘객 실수로 발생한 경북 의성 산불은 1만5185㏊를 태웠습니다. 축구장 2만1690개가 넘는 수준입니다. 새벽 5시 기준 행안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사상자는 19명에 달합니다. 산불은 영덕까지 번졌고 주택 145채가 전소됐습니다. 진화율은 아직 68% 수준입니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 25일 안평면 기도리 한 야산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인명·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 진화 작업에 투입된 산불진화대원들은 정작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에는 경남 산청에서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던 창녕군 소속 공무원과 진화대원 4명이 숨졌습니다.
5년차 산불진화대원 한영민(가명·57)씨는 지난 24일 오후 3시쯤 경북 의성군 중하리 인근에서 산불을 진화하다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큰불이 잡히는 듯했지만 바람이 산 아래 방향으로 불면서 불길이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향하며 삽시간에 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산 능성이 쪽에는 아직 잔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내려 꽂히면서 사고가 날 뻔했다"며 "다행히 물차(진화차)가 있어 불을 끄며 내려와 차량 한 5대가 간신히 불길을 빠져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재가 날리고, 뜨거운 바람이 밑에서 올라오고 폭풍우 같은 바람이 불었다"며 "열기에 숨 쉬기 힘들었고, 전부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고 숨을 골랐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산림청 직원과 업무를 지원하려 파견된 경북 영주시, 경북 영덕군 소속의 산불진화대원 등 30명이 정도가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대원들은 대피 중 불길 속 고립되기도 했습니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도 산불 진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장 대원들은 충분한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상에서 산불을 끄는 진화대원은 산림청 소속 공무직 노동자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과 지방자치단체·지방 산림청 소속 기간제 노동자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으로 나뉩니다. 불이 나면 특수진화대는 주요 불길을 진화하고, 예방진화대는 잔불 정리 작업에 투입됩니다.
최근 경남 산청 산불로 고립돼 숨진 채 발견된 4명 중 3명은 예방진화대원이었습니다. 이들은 충분한 안전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는지, 안전 장비를 갖췄는지 논란이 되는 상황입니다.
경북 의성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 25일 산불이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마을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예방진화대원은 물론 특수진화대원도 충분한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산림보호법 시행규칙 29조2항은 지방자치단체체장이나 지방산림청이 산불 방지 업무를 수행하는 진화대원들에게 산불 방지 교육·훈련을 매년 10시간 이상 받도록 규정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와 산림교육원은 각각 예방진화대원과 특수진화대원에 이틀간 이론·실무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진행될뿐 안전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게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의 증언입니다.
9년차 특수진화대원인 신현훈 공공운수노조 국가공무직지부 산림청지회장은 "특수진화대원은 채용되면 곧바로 일선 현장에 투입된다"며 "이후 산불 예방 기간이 끝난 뒤 6월쯤 산림교육원에서 대면 교육을 1년에 한 번 정도 받는데, 10년 동안 교육 내용이 그대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안전관리 교육이나 지휘관리 체계에 관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다"며 "도제식으로 선배 노동자가 경험하고 터득한 내용을 후임에게 가르쳐주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민가나 건축물 등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투입되는 소방공무원이 신규 임용되면 중앙소방학교와 소방훈련장 등에서 24주간 교육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산불 특수진화대원의 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지휘 체계도 불안정하다는 지적입니다. 한영민씨는 "전문적으로 교육시켜줄 사람이 없다"며 "(순환근무 체계다 보니)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공무원들이 새로 오고, 그분들도 현장에 와서 하나둘 배워 나가는 거니까 저희들을 교육할 수준이 안 된다. 그러니 저희 자체적으로 저희가 이제 저희 안전은 저희가 챙겨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전국의 특수진화대원은 435명입니다. 이 중 94.9%는 무기계약직, 즉 공무직 노동자입니다. 필수 안전 인력으로 2020년부터 순차적으로 공무직 노동자로 전환됐습니다. 이후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도 조금씩 개선됐지만, 공무원의 지시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합니다.
황정석 산불방지정책연구소장은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가 진화대원들에게 진화 교육과 안전교육을 시키는 것을 몇번 봤는데 그건 안전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며 "산불의 원리와 같은 이론 교육을 10년째 반복해서 듣고 있다. 게다가 특수진화대원은 공무직으로 공무원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어 가지도 못 한다. 대원들을 통솔하는 분들도 전문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황 소장은 "소방은 전국 8개의 소방학교에 수십년간 쌓아온 실전에 가까운 실화재 교육을 하고 있다"며 "그곳과 교육과정을 연계하거나 해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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