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유아들도 경험을 기억한다
fMRI 이용해 유아들의 해마에서 인코딩 신호 확인
유아기의 기억상실,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회상하지 못하기 때문
다음 연구 과제는 유아기의 기억이 이후 성장 발달에 미치는 영향
2025-03-27 06:00:00 2025-03-27 06:00:00
이번 연구를 주도한 컬럼비아대 예이츠 박사(왼쪽), 예일대 최다운 박사. (사진=tristansyates 블로그 캡처, 예일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서너 살까지의 유아기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로 유아기 기억상실(infantile amnesia)입니다. 생후 3~4세 이전의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episodic memories)을 회상할 수 없는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성인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벗어나 6세까지의 기억도 매우 단편적이고 맥락을 형성하지 못합니다. 보통 5~6세 정도가 되어야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 안정되고 성인과 비슷한 수준이 됩니다.
 
이렇게 유아기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뇌가 미성숙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은 두뇌 속에 형성되지만 회상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그 원인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신경과학자 트리스탄 예이츠(Tristan Yates) 박사와 예일대 한국계 최다운 박사 등으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하여 깨어 있는 유아들의 뇌를 스캔하면서 유아기 기억상실 메커니즘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진은 fMRI 통해 연구에 참여한 유아들의 해마 활동을 관찰했습니다. 연구진은 fMRI 안에서 계곡, 강아지 장난감, 여성의 얼굴 등이 2초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상을 아기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의 배경에는 아기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만화경 같은 사이키델릭한 무늬가 계속 나타나도록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분 후에 아기들에게 직전에 보여준 것과 유사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계곡과 폭포 사진을 병렬로 보여주었습니다. 아기들이 이전에 본 계곡을 기억한다면 폭포보다 계곡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연구진은 아기들이 익숙한 대상을 더 선호하는 것을 기억 형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사진을 볼 때는 아기들 뇌의 해마 활동이 커졌습니다. 이것은 약 1세부터 시작되는 기억 기반의 사물을 보는 행동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별 기억을 인코딩하는 능력이 유아기 동안 활성화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현상은 fMRI를 통해 해마 활동을 관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12개월이 넘은 유아들의 해마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개별 기억을 인코딩하는 해마의 능력이 점진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번 연구는 유아기 기억상실이 기억을 생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회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컴퓨터로 말하면 저장은 되어 있는데 검색이 안 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파일을 열어서 저장된 정보를 메모리로 가져오는 게 안 되는 상황입니다.
 
연구를 주도한 예이츠 박사는 “유아기의 기억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접근할 수 없을 뿐”이라면서 “기억이 처음 저장된 방식과, 그것을 회상하려고 할 때 뇌가 사용하는 단서나 검색어 사이의 불일치”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유아의 fMRI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예일대 니콜라스 턱-브라운 박사 연구팀. (사진=예일대)
 
이전에도 동물을 대상을 비슷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2005년에 스탠포드대학의 신경과학자 카를 디세로스(Karl Deisseroth) 교수는 특정 세포나 뉴런에 빛에 반응하는 유전자를 삽입해 해당 뉴런을 조절하는 옵토제네틱스(optogenetics)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뉴런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제어하고, 뇌의 특정 회로가 행동이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6년 한 연구에서는 신경과학자들이 이 기법을 사용해 성체 쥐의 뇌에서 유아기 기억을 인코딩한 뉴런을 활성화했으며, 이를 통해 기억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번 fMRI를 통한 연구는 인간도 부모가 누구인지 배우고, 언어를 익히며, 걷는 법을 터득하는 유아기에 기억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아기는 인간의 생애에서 뇌가 경험에 따라 구조적·기능적으로 변화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가장 높은 시기입니다. 예이츠 교수의 스승이자 예일대학 심리학과 니콜라스 턱-브라운(Nicholas Turk-Browne) 교수는 “유아기의 뇌가 어떻게 학습하고 기억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이후 평생 동안 우리가 알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유아들의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유아기에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런 기억들이 뇌에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있고 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과제로 남습니다.
 
연구진은 부모들이 아기의 시점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도록 하고 fMRI 속에서 그 영상을 다시 보여주면서 아기들의 해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조사하려고 합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3월20일자로 실렸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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