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김태은 기자] 역대급 피해를 낸 경북 북부지역 산불이 마침내 꺼졌습니다. 최악의 산불은 지방 고령층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냈는데요. 산불로 인한 피해자도, 진화대원도 모두 고령층이었습니다. 인구감소·고령화가 심각한 산악지역 특성상 재난이 발생했을 때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지만 제대로 된 재난 매뉴얼은 없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사망자 14명 평균 연령 '78세'…'안전취약계층 메뉴얼'은 없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8일 이번 산불 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28명(오전 6시 기준)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사망자는 특히 경북 지역(24명)에 집중됐는데, 이들 대다수가 노인·장애인·환자 등 안전취약계층인 걸로 나타났습니다.
서미화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집계된 경북 산불피해 사망자·실종자 18명 중 14명의 평균 연령은 '78세'였습니다. 그 외에 2명은 59세였고, 2명은 나이가 확인되지 않았는데요. 피해자엔 소아마비환자 1명, 청각장애인 1명, 와상환자 4명, 치매환자 1명도 포함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경북 영덕군 영덕읍 요양시설의 80대 입소자 3명은 차를 타고 대피하다가 차량 폭발로 사망했고, 영덕읍 매정리에선 80대 노부부가 집 앞 불과 1분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북 청송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자택 등에서 사망했습니다.
경북 지역의 지난해 고령인구는 24.7%로, 경북은 전남(26.2%)에 이어 전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지역입니다. 주민 다수가 긴급재난 문자를 받아도 자력으로 대피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 겁니다. 게다가 이번 의성 산불은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도 빠른 수준인 시간당 5.2km로 확산했다는 점에서, 고령층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안전취약계층의 재난 피해현황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고, 이들을 위한 재난 위기관리 매뉴얼도 없었습니다. 지자체 차원의 피난 지원도 사실상 없었습니다. 현행 재난안전법엔 대피명령 등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안전취약계층의 피난 계획 등과 관련한 지자체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없기 때문입니다.
28일 경북 의성군 산림이 일주일간 지속된 산불로 폐허가 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령화에 '평균 61세' 진화대원들…속수무책으로 화재 현장 투입
반면 일본은 재해대책기본법을 통해 각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이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명부를 작성하고, 누가 이들의 피난을 도울지 정해두는 개별 피난계획을 작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처럼 피난지원과 관련한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역 주민과 가장 밀접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대피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실질적인 작동을 위해 복지기관을 비롯한 관련 전문가가 협력하고, 지역 주민과 정기적인 회의·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각자의 역할 분담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산림청이 산불에 주력 대응하는 현행 대응체계의 문제점도 제기됩니다. 초기에는 산림청이 주도하고, 확산 시 소방청이 지원·구조 역할을 지원하는 식인데요. 그러나 전국 지자체가 고용한 산불 진화대원의 평균 연령은 약 61세고 65세 이상 비율은 33.7%(2022년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산불 사태에서도 '최고대응 단계'가 발령된 진화 현장에 상대적으로 고령의 인력이 투입되면서, 진화대원 3명이 숨지기도 했는데요. 이들의 급여는 하루 8만 원 정도로 최저임금 수준이고, 고용 형태도 기간제, 무기계약직으로 불안정해서 오랫동안 일하며 전문성을 쌓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또 경사도가 높은 한반도 산림에서 고령자가 진화에 나서기란 어렵습니다.
정태헌 경북도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젊은 인력이 많은 소방청 인력이 산불 진화의 주력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권역별 산림청 산불 대응팀은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전문가이지만, 예방진화대원은 그렇지 않다"며 "이분들을 산불 감시나, 지형 정보 제공에 투입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지적했습니다.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는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산불 특성상 산림청이 '권역별 이중 거점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상도 지역의 경우 경북 강원 접경 지역, 경남, 동해 지역, 내륙 지역 등 최소한 네 군데에서 강력한 거점 산불 대응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현행 산불 진압은 대응 3단계가 되면 권역 내 100% 자원을 동원하고, 인근 자원은 50%가량 동원하는 식인데, 이번 산불 사태에선 남부지방산림청 권역으로 묶이는 곳에 동시다발 산불이 나면서 대응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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