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애초 지난달 말 사업자를 정하기로 했으나 '선정 방식'을 논의하는 회의조차 열리지 않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두고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에 수의계약을 밀어주려고 하면서 일이 틀어진 탓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국방부 차관도 KDDX 사업자 선정 과정에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특정 업체 밀어주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 구축함 조감도. (사진=연합뉴스)
1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방사청은 지난달 27일 KDDX 사업자 선정에 관한 분과위원회를 열기로 했으나 파행됐습니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을 사업자로 정하고,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민간위원들이 여기에 강력 반발하면서 분과위가 결렬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분과위가 파행된 날 방사청은 정기 브리핑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두 함정 업체와 상생 협력 방안을 논의한 후에 분과위에 이어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 상정해 (사업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설계 협력, 공동 개발 방안 등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방안들을 논의했고, 앞으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두 업체의 의견을 들어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취재 결과, 방사청은 지난달 17일부터 HD현대중공업에 수의계약으로 KDDX 사업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고, 분과위 민간위원들과 입장 차이가 컸다고 합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을 밀어주는 것에 반대하는 민간위원들을 '패싱'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방위사업법 9조에 따르면, 방위산업의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과 재원의 운용 등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방추위를 두도록 했습니다. 각 분과위가 주요 안건을 심의·조정한 후 보고서를 올리면 방추위가 처리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방사청은 KDDX 사업자에 관한 안건을 '심의 안건'이 아닌 '보고' 안건으로 상정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심의 안건은 분과위 위원들이 해당 사업에 대해 검토하고 논의하지만, 보고 안건으로 올리면 위원들은 별도 심의를 하지 않습니다. 안건을 방사청의 입맛대로 넘길 수 있다는 겁니다.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이 2024년 10월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KDDX 사업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심의 안건이 아닌 보고 안건으로 처리하려고 한 건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군사기밀 유출 등을 사유로 보안 감점을 받아 올해 11월까지 사업을 수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0.1점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마당에 HD현대중공업은 1.8점이나 감점된 겁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이 해당 사업을 경쟁입찰이 아닌 한 회사를 '콕 집어' 수의계약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민간위원들이 반발하자 이들을 '패싱'하려고 보고 안건으로 상정한 겁니다. 절차적 문제는 물론 '특혜'를 주려고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실제로 방사청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해당 안건은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방사청 A부장에게 지시해서 보고 안건으로 바꾼 것”이라며 "그러자 민간위원들은 '왜 이걸 보고 안건으로 올리느냐'라며 문제 제기를 했다. 3월27일 분과위 회의가 안 열린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서는 김 차관이 "KDDX 사업 방식에 대해 관련 부서에 조속한 결론 도출을 사실상 지시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방사청 관계자가 올 초 국회를 찾아 HD현대중공업 경쟁사인 한화오션에 관한 의혹을 거론한 걸로 파악됐습니다. 이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2020년 KDDX 입찰 경쟁 때 제출한 개념설계 보고서를 한화오션이 무단 도용했다는 의혹을 언급했다는 겁니다. 대우조선해양은 2023년 한화그룹에 인수된 후 한화오션으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국회에서 한화오션에 관해 발언한 인물도 A부장입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국군방첩사령부에서 방사청에 '불입건'을 통보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이 한화오션 의혹을 거론한 건 사실상 HD현대중공업에 사업을 몰아주려고 조직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울산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뉴스토마토>는 KDDX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는 배경과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을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 김 차관의 입김이 존재한다는 주장 등에 관해 방사청에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방사청은 KDDX의 필요성, 함정의 특성과 기술적 난이도를 고려한 최적의 사업 추진 방안, 함정산업 전반의 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 추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특정 업체를 위해 의사결정을 한다는 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방사청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속한 시일 내 위원회를 통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또 KDDX 사업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수의계약을 심의 안건이 아닌 보고 안건으로 올린 것에 대해선 "KDDX 사업의 분과위 상정 안건의 형식은 기결정된 'KDDX 사업추진 기본전략'과 관계법령과 규정에 따라 심의·보고 안건 형식으로 정했다"며 "'HD현대 수의계약' 내용 자체는 보고 안건으로 상정한 바 없다"고 했습니다.
3월27일 분과위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선 "함정업체와 상생 협력 방안을 추가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제기되어 분과위 상정을 보류한 것일 뿐"이라며 "민간위원과 입장 차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했습니다.
방사청은 아울러 "김 차관이 '특정 업체에 사업을 주라고 압박했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했습니다. 방사청 관계자가 국회를 찾아 한화오션 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선 "다수 국회의원이 KDDX 사업 추진과 개념설계 보고서 원본의 무단 보유 사실관계에 대해 설명을 요청했기 때문에 설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김 차관에게도 HD현대중공업 수의계약 관련 질의 문자를 보냈지만, 김 차관은 문자는 읽고 답변은 하지 않았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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