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22일 17:56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통상 비수기로 여겨지는 4월 회사채 시장이 올해는 이례적으로 활황을 보였다. 증권신고서 제출 기업 수는 물론이고, 발행 규모도 두 배를 훌쩍 넘겼다. 최근 금리 하락과 기업들의 자금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회사채 발행이 급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아닌 회사채 발행 행진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2일 기준 회사채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 제출 기업은 총 37곳이다. 발행조건 확정 포함 발행 규모는 7조3100억원이다. 이는 1년 전 16곳 2조6530억원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4월부터는 12월 결산법인 회계가 마무리돼 5월까지 채권 발행은 비수기를 맞는다. 하지만 최근 발행금리 하락과 더불어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비수기임에도 성수기 못지않게 발행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수치인 회사채 순발행액 잔액은 1조540억원으로 나타났다. 회사채 순발행액이 1조원을 상회한 것은 저금리로 시장의 유동성이 넘쳐났던 2021년 이후 4년 만이다.
발행 기업 내역을 살펴보면 이 같은 경향은 두드러진다. 지난해 4월 채권시장에선 비인기 채권 기업들의 틈새 공략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올 4월 채권시장에선 15년 만에 공모채 시장에 이름을 올린
고려아연(010130)(7000억원)을 비롯해 SK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SK네트웍스(001740)(4000억원), CJ그룹의
CJ대한통운(000120)(4000억원)등 빅이슈어가 공모채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박경민
DB(012030)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3년물 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상황에서 크레딧 채권의 상대적인 금리 매력은 유효하고 채권 관련 자금 유입도 지속되고 있다”라며 “시장이 낮아진 절대금리 레벨에 적응하기까지 제한적인 조정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 고갈에 기업대출마저 길 막혀
사실 회사채 발행 붐은 기업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 창구인 은행권 대출은 최근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그로 인한 변동성 증가로 은행권이 자본비율 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여의도 증권가(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2조1000억원 감소한 1324조 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3월 기준 기업대출 잔액이 줄어든 것은 20년 만이다. 특히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94조9811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9117억원 줄었다.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유상증자마저도 주가 변동성 확대 금융당국의 견제가 커지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를 들어 2조원이 넘는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삼성SDI(006400)는 주식가치 희석 우려와 당국 견제로 규모를 1조7282억원(주당 14만6200원)으로 낮췄다.
대출과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창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저등급 하이일드 채권까지 완판되는 양상이다. 하이일드 채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가 발행한 고위험·고수익 채권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진행된
한진칼(180640)의 채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500억원 모집에 190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한진칼 채권은 신용등급 BBB+의 하이일드 채권으로 분류됨에도 2년물 200억원 모집에 700억원, 3년물 300억원 모집에 1200억원의 자금이 몰려 완판에 성공했다. 금리에서도 2년물은 –151bp(bp=0.01%), 3년물은 –70bp에 목표액을 채워 금리 할인도 이뤄냈다.
앞서 하이일드 채권 시장은 올해부터 세제 혜택이 끝나 어려움이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한진칼이 전량 판매하면서 단순히 고금리나 수익성을 노린 자금 흐름이 아닌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 시장으로 자금이 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향후 금리 환경 변화에 따라 채권 발행 행보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채권 발행에 나서는 기업 대다수가 설비투자와 같은 투자 목적보다는 낮아진 발행 금리를 노린 만큼 향후 채권 금리가 안정되고 고금리 부채 상환이 이뤄지면 평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현재로서는 투자 수요가 충분해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외면받던 채권까지 충분히 소화되고 있다"라며 "다만 향후 기업들이 고금리 시기 발행한 부채 상환이 마무리된다면 채권 발행은 다시 평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