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는 한·미…졸속 협상 우려
막 오른 '한·미 2+2 통상 협의'…비관세·방위비 등 의제 주목
성과 목마른 '트럼프 속도' 관건…정부, 협상 아닌 '협의 탐색전'
2025-04-23 17:03:26 2025-04-23 18:47:47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트럼프발 관세 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미 경제·통상 수장이 마주 앉는 '2+2 통상 협의'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협의는 '통상 협의'라는 명칭이 붙은 만큼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등의 비관세 장벽은 물론, 방위비 분담금 이슈까지 폭넓게 거론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깜짝 등장해 직접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양국 수장들이 통상·외환·금융 등 이슈를 다룰 이번 협의는 양국 간 관세 협상 출발선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정부 경제 수장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을 최대한 피하고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 경쟁력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한·미 간 조선·에너지 개발 협력 등 우리 산업 전반의 내실을 챙길 물꼬를 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달 말 취임 100일 앞두고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 행정부의 속도전에 휘말릴 경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의 졸속 협상 우려도 나옵니다. 
 
한국 향해 '머니 머신'…'패키지 딜' 땐 전방위 압박
 
경제 사령탑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9시) 미국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 제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 통상 협의'를 진행합니다. 미 재무부 요청으로 성사된 이번 협의엔 통상 정책 집행을 총괄하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부총리는 한국 당국자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을 찾은 최고위급 인사입니다. 그는 당초 워싱턴에서 23∼24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미길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요청으로 양국 통상 회의까지 참석하게 됐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무역 상대국에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뒤, 국가별로 양자 통상 협의를 진행 중입니다. 한국 역시 이번 협의를 계기로 미국과 고위급 수준의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게 된 셈입니다.
 
이번 협의의 의제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최 부총리도 출국 전 "미국과 조율 중이며 확정된 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번 협의가 재무 분야에서 확대됐고, '통상 협의'라는 명칭이 붙은 만큼 더욱 폭넓게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는 관세율 하향 조정이라는 목표 아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조선업 협력, 알래스카 가스 개발 사업 참여 등을 주요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미국은 통상과 안보를 연계하는 '패키지 딜'(일괄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전방위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단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과 쌀 저율관세할당 등 비관세 장벽에 대한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고율의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쌀·자동차·소고기 등 특정 품목 교역을 한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의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대선 후보 시절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이라고 부른 만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통상 문제와 합쳐 꺼내들 수 있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 협의를 하기 위해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윈윈 전략에도…커지는 딜레마 
 
정부는 신속한 협상 결과물을 내길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서로 입장과 의견을 조율하며 미국이 원하는 지점을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는 입장입니다. 출국 전 "한·미 동맹을 새롭게 다지는 논의의 물꼬를 트고 돌아오겠다"고 밝힌 최 부총리의 발언만 봐도 이번 만남이 합의와 결과물을 도출하는 '협상'이 아닌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교환하는 '협의'임을 분명히 시사했습니다. 
 
최 부총리는 워싱턴 D.C.에 도착해서도 "한·미 동맹을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러 왔다"고 방미 목적을 밝히면서 미국 관심사에 대해 "충분히 들을 것이며, 우리 입장도 적극적으로 설명하겠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니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안 장관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한·미 양국이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며 "무역 불균형 문제, 조선·에너지와 같은 산업 협력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2+2 통상협의'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관세 협상 속도전…한덕수 출마용 졸속 협상도
 
문제는 '트럼프 속도'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 대통령이 변수인 데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 행정부의 속전속결 분위기에 휩쓸린다면 졸속 협상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미국 백악관은 이번 주에만 34개 국가와 회담하는데, 이른바 '트럼프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백악관이 언급한 34개국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라는 점도 졸속 협상 우려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한국의 권한대행 체제라는 점을 이용해 미국 측이 속도전으로 나올 수 있는 것과 더불어 한 권한대행 주도의 대미 통상 협상이 "출마용 졸속 관세 협상"이라는 정치권의 비판도 따라붙습니다. 한 권한대행의 '차출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한 대행이 '한미 2+2 통상 협의'를 구름판 삼아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트럼프 속도전에 휘말려 졸속 협상으로 끝날 경우 굴욕 외교 비판은 물론, 국내 경제에 미치는 타격도 불가피합니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가 이날 펴낸 '한·미 통상 협상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보면, 양국 관세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0.5%포인트가량의 성장률 하락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으로 전반적인 무역 규모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한데, 졸속 협상으로 끝날 경우 국내 산업, 금융시장 등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한덕수 권한대행 정부가 미국 장단에 맞춰서 먼저 춤을 추지 않길 바란다"며 "미국 관세 정책이 체계적이지도 않고, 아침·저녁에 다르지 않냐. 한 발짝 물러서 조금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60일도 안 돼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협상은 협상대로 응해주는 모양새를 취하되, 대행 정부가 다음 정부의 경제·외교·안보에 영향을 줄 정도의 결단은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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