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한국 국방비 GDP 5% 수준 증액 가이드라인 제시 파장
무리한 요구 비판 속 안보·재정 여건 감안한 장기 증액 방안 제시 필요성 제기
2025-06-20 16:54:30 2025-06-20 20:20:08
연도별 한국 국방비 비율 추이.(사진=국방부)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의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재정에 대해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권한은 없습니다. 내정 간섭이자 무리한 요구입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행한 <밀리터리 발란스 2024(The Military Balance 2024)>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방비 지출 상위 12개국 가운데 GDP의 5% 이상을 국방비로 사용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6.46%) 한 나라 뿐입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의 동맹국들에 이어 아시아 동맹국들에게까지 이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냉혹한 현실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요. 일단 상황을 평가해 봐야 합니다. 올해 기준 한국의 국방비는 일반회계를 기준으로 61조 2000억원 수준입니다. 지난해 GDP의 2.32%를 차지합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GDP 5%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죠. 이를 미국의 요구에 맞추려면 국방비는 132조원 수준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정부 재정 670조원의 5분의 1 가량을 국방비에 써야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미국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한국 국방부는 20일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이 담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국방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등 엄중한 안보 상황을 고려해 국방비를 지속 증액해 오고 있다"며 "한국은 앞으로도 한반도 방위와 지역내 평화·안정에 필요한 능력과 태세를 구비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안보상황과 경제여건 등을 감한하겠지만 국방비는 지속적으로 늘려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됩니다.
 
미국은 왜 이런 요구를 했을까요. 누구나 쉽게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지출하는 국방비를 줄이겠다는 의도입니다. 미국은 국방비에 12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조국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죠. 그럼에도 지신들이 세운 기준 GDP 5%에는 못미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3.38% 수준입니다.
 
미국이 줄인 국방비는 동맹국에게 전가될 것입니다. 늘어난 동맹국들의 국방비는 미국 방산업체에게 기회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군산복합체 국가입니다.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스롭그루먼 등 미국의 초대형 방산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세계 무기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방비 증액 요구에 다른나라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한국보다 먼저 국방비 증액 압박을 받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잇따라 국방비 증액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순수 국방비를 GDP의 5% 수준까지는 늘리겠다고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최근 GDP의 국방비 비중을 2027년까지 2.5%로 높이고 2029년부터인 다음 의회 임기에서는 3%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기준 GDP 대비 약 2% 수준인 국방비를 3.5%로 증액하고, 대비 태세를 뒷받침할 관련 인프라에 1.5%를 추가 지출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직접 군사비 3.5%, 간접적 안보 관련 비용 1.5%로 총 5% 국방비로 지출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경기 동두천시 캠프케이시에서 새로운 부대와 교대해 본국으로 귀환하는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 제1스트라이커여단 장병들이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수송 전 최종점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도 이런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보 환경과 재정 여건을 고려해 가며 시간을 두고 국방비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해야 합니다. 직접 국방비 외에도 안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비용도 간접비로 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방비 증액 계획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미래 전장환경에 부합하는 방위력 개선을 위한 비용이 반영돼야 합니다. 특히 북한의 위협뿐 만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정 특성에 따른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원자력추진잠수함과 (경)항공모함 도입 등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여기에 6세대 전투기 개발과 같은 무인 무기체계 도입 계획도 반영돼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장병들의 복무여건 개선 등에 필요한 예산도 충분히 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선택적 모병제 시행에 필요한 제원을 반드시 계산해야 합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모병제 국가인 미국은 군에 막 입대한 훈련병에게 약 35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한국이 다른 동맹국들에 비해 많은 국방비를 지출해 온 점도 강조해야 합니다. 1970~80년대 한국의 국방비는 GDP의 4~5%를 넘나들었습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그 비율이 줄기 했지만 1990년대 이후에도 지금까지 GDP 대비 2~3%대의 국방비를 지출하며 유럽의 주요국가들보다 많은 GDP 대비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참석하게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첫 대면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관세를 포함한 통상문제와 함께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가 될 것입니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북한의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를 적게 쓰며 미국에 의존한다고 불만을 표출하며 관세문제 등과 함께 엮어 압박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두 정상 간 첫 대면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엄 사무총장은 "단기적으로 국방비를 급격히 늘리는 것은 우리나라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분명히 어려운 일"이라며 "미국에 우리 국방비를 점차 증액해 유럽처럼 2030년대까지 GDP 대비 3% 정도로 인상하는 합리적인 계획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엄 사무총장은 "장기적으로 전작권 환수 등을 염두에 두고 우리 군사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미국산 무기체계 도입 계획 등을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우리가 필요한 전략무기 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엄 총장은 "국방비 증액을 피할 수 없어 기왕 국방비를 더 써야한다면 미국의 압박에 끌려다니지말고 이번기회에 장병 복무여건 개선이나 선택적 모병제 등 우리 군대의 체질개선, 군대혁신의 기회로 삼아서 과감하게 예산을 투입하는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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