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중순까지 SK텔레콤 고객들의 고민이 깊어질 듯하다. 지난 4일 민관합동조사단이 SK텔레콤 해킹 사태와 관련해 사업자 과실 부분이 있다고 최종 판단한 데 발맞춰 회사도 해킹 사태 여파로 해지를 결심한 고객에 대한 위약금을 면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간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약정 위반 시 발생할 위약금 때문에 SKT 이탈에 나서지 못했던 고객들에게 일종의 탈출로가 열린 셈이다. 다만 기간은 한정돼 있다. 발표 시점부터 10일 간이니 오는 14일까지다. 어느새 주말도 훌쩍 지나갔고, 이제 시간은 일주일 정도 남았다.
SKT는 T월드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 고객센터 등 공식 채널에 알리는 것 외에 위약금 환급 대상자에게 별도 안내 문자(SMS)를 발송할 예정이다. 그러나 고령층이나 정보 취약 계층 등을 고려하면 모든 해당 고객들이 정보를 숙지하고 선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위약금 면제 신청 기간이 너무 짧게 책정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특히 오는 22일부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로 통신사 지원금 경쟁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속 위약금 면제 이슈를 그 전에 마무리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측면도 있다.
2016년 갤럭시 노트7 결함 사태 당시엔 제조사 귀책 사유임에도 통신 3사가 3개월간 위약금 면제를 허용했던 전례가 있다. 물론 이 경우 단말기가 리콜에 들어감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였기 때문에 통신사가 고객에게 위약금을 물도록 할 명분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부 정책 결정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제3자의 귀책일 때는 통신 3사 공히 위약금을 장기간 면제하는 것으로 일사천리로 합의해 진행했던 것과 달리, 개별 통신사의 귀책 사유가 원인이 되자 한발 뒤늦게 위약금 면제를 단기간에 한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까닭이다.
회사 귀책 여부에 대해 판단할 때 눈에 명확히 인지되는 '상품(단말기)'과 그렇지 않은 '서비스(통신)'라고 해서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업계 상위 사업자인 SK텔레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느낄 자부심은 삼성 갤럭시 폰을 사용하는 고객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상품과 서비스는 그 특성이 달라 소비자 피해 대응에도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아쉬운 대목으로 남을 것이다. 서비스 기업의 지위를 그만큼 깎아내리는 것이자, 통신 강국이란 자존심에도 스크래치를 남기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안 그래도 집토끼(기존 가입자)들이 적지 않게 떠난 마당에 남은 집토끼들한테까지 출입문이 10일간 열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SKT가 누구인가. 오랜 세월 '1등 기업' 이미지를 유지해온 국내 굴지의 통신사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일련의 대응 과정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어차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신세를 당장 면할 수는 없을 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외양간의 빠른 보수, 그리고 철저한 피해 보상만이 살길이다. 10일간의 위약금 면제안과 함께 발표된 5년간 7000억원 규모의 정보보호 투자, 연말까지 5000억원 상당 고객 감사 패키지 증정도 고객의 마음을 달래기엔 어딘가 부족한 인상을 준다. 긴 눈치 싸움 끝에 정부 조사 결과 발표 시점에 맞춰 한발 늦게 나온 대책들인 까닭이다. 어차피 결과적으로도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하게 됐음에도 개별 고객의 정확한 피해 복구를 위해 기업이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해 안타깝다.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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