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조선업계와 철강업계가 조선용 후판 가격 협상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중국산 선박 블록(조립 부품) 수입을 두고 충돌하고 있습니다. 선박 블록은 후판을 이어 붙여 만든 선박용 부품으로, 수입량이 늘어나면 국내산 후판의 수요가 줄어들게 됩니다. 철강업계는 중국산 선박 블록 수입 확대는 중국산 후판의 ‘우회 수입’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반면 조선업계는 기존부터 중국산 선박 블록을 수입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 모습. (사진=포스코).
두 업계는 올해 3분기 조선용 후판 가격을 두고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철강업계는 3분기 후판 가격을 올해 2분기보다 약 5만원 오른 85만원 안팎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판은 선박 구조물에 쓰이는 핵심 소재로, 선박 원가의 약 20%가량을 차지합니다. 철강사들의 전체 매출에서 약 10~20%를 차지하는 주요 매출원이기도 합니다. 이에 후판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느냐에 따라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희비가 갈립니다. 올해부터 후판 가격 협상 주기를 반기 단위에서 분기 단위로 바뀐 것은 후판 가격 협상이 그만큼 민감하다는 방증입니다.
그동안 후판 가격 협상은 철강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해왔습니다. 2023년 상반기 톤 당 100만원 수준이었던 후판 가격은 중국산 후판이 국내에 대거 유입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70만원 후반까지 떨어진 바 있습니다. 중국산 저가 후판은 국내 제품보다 약 20% 저렴합니다.
그러나 지난 3월 정부가 중국산 후판에 최대 38.02%의 반덤핑 관세 예비 판정을 내리고 중국도 철강 감산 조치에 나서면서, 후판 유통 가격은 반등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엔 후판 반덤핑 관세가 21.62%로 확정되면서 중국산 후판 수입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철강업계의 가격 인상 명분이 더 명확해진 것입니다. 이에 철강업계는 실적 악화 장기화, 전기요금·인건비 상승, 원료 수입 단가 인상 등을 근거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인상이 곧 원가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신규 선박 발주가 하락하고 있어 후판 가격이 상승할 경우, 중국 조선사에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여기에 미국발 관세 영향, 환율 등 변수가 다양해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중국산 선박 블록 수입을 두고 두 업계의 신경전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선박 블록은 후판을 이어 붙여 만든 선박용 부품으로,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이 각각 중국에 둔 자회사와 현지 법인을 통해 선박용 블록을 제작해 들여오고 있습니다.
선박 블록은 수입 시 완제품 형태로 들어와 후판에 비해 관세 규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이에 중국산 후판에 부과된 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 수입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철강업계는 중국 공장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선박용 블록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선박 블록의 수입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후판의 수요가 블록으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후판의 수요가 계속 줄어들면, 공급망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조선업계는 단기에 선박 블록 수입을 늘릴 수 없는 구조라는 입장입니다. 매년 공장의 생산 계획을 수립하고, 정해진 물량을 수입하고 있어 유동적으로 조절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인력난, 안정적 공급, 원가 절감 등을 위해 중국에 자체 거점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며 “배를 만들게 되면 처음부터 물량이 다 정해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