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다음 달 1일(이하 현지시간)로 예정된 상호관세 유예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측의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측과 대면 협상이 가능한 실질적 시한이 30일과 31일 단 이틀에 불과한 상황인데요. 자칫 대미 관세 협상에 실패라도 한다면 우리 경제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김용범(오른쪽) 정책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통상대책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 관세협상 시한…단 '이틀'
27일 대통령실 및 관계 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지난 25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뉴욕 자택까지 찾아가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수정안을 들고 대미 투자, 소고기·쌀을 포함한 농·축산물 이슈 등 쟁점 분야에서의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다만 이들의 협상이 타결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해 추가 협상이 필요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막판 협상을 위한 협상단을 추가로 파견합니다. 대통령실은 이틀 연속으로 대미 통상 대책 긴급회의를 열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미국 측 카운터파트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단독으로 만남을 갖고 막판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따로 만날 계획입니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대미 관세 협상에 최대 난관은 '시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스코틀랜드에서 유럽연합(EU)과 관세 협상을 진행합니다. 28일과 29일에는 스웨덴에서 베센트 장관 등 미 무역 협상 주요 장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중국과 고위급 무역 회담이 잡혀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우리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과 협상할 수 있는 시한은 30일과 31일 단 이틀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우리 정부가 25%에 달하는 상호관세 수치를 일본 수준(15%)으로라도 낮추기 위한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건데요. 재무수장 간 협의가 난항 끝에 다시 잡히기는 했지만 상호관세 부과 예정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다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입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면 타결까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관세 인하 때마다 '보상'…극한 '거래주의'
관세 협상에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 장벽'의 철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가가치세 등 세제 체계 개편과 쇠고기·쌀 등의 농축산물 개방, 온라인플랫폼법 '재고',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의 개방 품목을 보면 대부분 비관세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최근 협상을 타결한 일본은 자동차·트럭의 개방을 확대하면서 쌀과 기타 농산물의 일부 개방을 약속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은 미국에 55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는데, 해당 투자의 발생 이익 90%는 미국이 얻을 전망입니다.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한 영국도 수입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0%로 인하하며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대폭 개방을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해 영국은 기존 1000톤(t)의 쇠고기 수입 쿼터에 부과되는 20%의 관세를 철폐했습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대미 수입 제품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비관세 장벽 자체를 '철폐'하는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경우 대미 관세 협상에 있어 쌀과 소고기 등 '농산물 레드라인'을 설정한 바 있습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 두 품목(쌀·소고기)은 농촌 경제와 국가 식량안보에 직결되며 국민 반감도 크다"며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한발 물러나 한·미 통상 협상에서 바이오에탄올 등 연료용 농산물 수입 확대를 제한적 협상 카드로 고려하고 있는데요.
앞서 김용범 정책실장이 지난 25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이 포함돼 있다"고 밝힌 뒤 러트닉 장관 자택 회동까지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협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 협상 방식입니다. 당초 한국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1000억달러 이상의 제조업 직접 투자 카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경우처럼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투입될 재원 마련에 동참하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상에 있어 거래주의적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미·일 협상은 한·미 무역협상의 가늠자로 평가됐는데요.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관세를 1%포인트 인하할 때마다 보상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협상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1%포인트 인하 때마다 쌀 수입 확대와 반도체 지원액 증가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한 지원 카드를 요구한 겁니다.
또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협상단이 제시하는 복잡한 제도화는 거부하고, 구체적인 단순한 조건만을 선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일 협상은 '대규모 거래'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흘러갔다고 합니다.
다만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제조업의 부흥에 있는 만큼 우리 정부로서는 조선을 포함한 산업 협력 카드와 농축산물에 대한 추가 접근을 고리로 협상을 완료한다는 방침입니다. 대신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상호관세 25%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제조업 타격으로 국내 총생산(GDP)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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