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카드·보험업권 등을 대상으로 릴레이 간담회를 예고한 가운데 금융권이 어떤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금융사들은 이재명정부 초대 금감원장과 첫 만남인 만큼 주요 국정 과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업권 릴레이 간담회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오는 28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은행연합회장과 20개 국내은행 은행장을 만납니다. 취임 후 첫 업권별 상견례 성격의 자리입니다. 이 원장은 은행권과 만남 이후 보험·증권·여신전문금융·저축은행 등 각 금융업권과도 순차적으로 자리르 가질 예정입니다.
첫 만남을 앞둔 은행권은 바짝 긴장한 모습입니다. 이 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데다 금융기관 또는 금융사 경력이 전무해 성향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금융권의 실물경제 지원과 생산적 금융 기능 강화를 주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은행권은 국민성장펀드·배드뱅크 출자, 교육세율 인상, 중대재해 기업 신용 평가 강화, 석유화학 기업 대출 만기 연장 등 다양한 방식의 상생금융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은행권도 이번 간담회를 앞두고 정부 국정과제에 부응하는 금융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장을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국정 과제 관련 성과를 미완의 상태로 보고하기는 어렵다"며 "정부 출범 이후 금융업권 간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협회 차원에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이 원장의 간담회 일정에 맞춰 금융사들이 개별적으로 상생금융 방안을 발표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을 담당할 '배드뱅크' 출연금 분담안이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약 8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책정했고 이 중 4000억원을 금융권 출연금으로 마련하기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금융당국은 업권 간 자율 협약으로 정하라는 입장이지만, 분담 비율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배드뱅크 출연금 분담 비율 합의안을 조기에 마련할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찬진(가운데) 금융감독원장은 오는 28일 은행장 간담회를 가진 뒤 내달 1일 보험업권, 4일 저축은행업권, 8일 금융투자업권과 차례로 만난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 원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상생 금융 압박 계속
윤석열정부에서도 이복현 전 금감원장이 은행·보험·카드·저축은행 등 업권별 릴레이 회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금융사들은 다양한 상생 금융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은행들은 당시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이자 감면, 채무조정 프로그램 등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금융 지원책을 제시하며 정부 정책에 부응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는 첫 상견례인 만큼 업계 주요 현안을 청취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며 "일괄적 또는 개별적으로 금융 지원책을 마련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금융권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자본건전성 관리가 중요합니다. 은행들은 당국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홍콩 ELS 사태'입니다. 총 16조원 규모로 판매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여파로 일부 은행들에 수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당국이 과징금 산정 기준을 수수료가 아닌 판매금액으로 삼기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판매액의 전부가 불완전판매는 아니라고 상정할 경우에도 과징금 비율(25~50%)에 따라 4대 은행의 과징금이 총 1조~2조원 전후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부동산 대출 규제도 주요 시험대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담합했다며 과징금 제재를 준비 중입니다. 앞서 금감원이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과도한 제재는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사안인데, 새 원장의 입장에 따라 금융권 전반의 대응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ELS 과징금 건의 경우 전임 금감원장이 선제적 자율배상을 유도하며 감경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새 금감원장이 그 기조를 이어갈지는 불투명하다"고 우려했습니다. LTV 담합 의혹 건에 대해서도 "법조계 출신인 이 원장이 원칙론에 입각해 강경 기조를 이어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자 장사'를 억제하려는 당국의 위험 가중치 개편 논의 역시 향후 은행권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지도 관심사입니다. 현재 당국은 가계대출 추가 대책의 일환으로 주택담보대출에 적용하는 위험 가중치를 현행 최저 15%에서 25% 수준까지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대 은행의 자본 비율을 평균 0.51%p 끌어내릴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 보호와 생산적 금융 확대를 강조한 가운데 이 원장과 첫 만남을 앞두고 있는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4대 금융지주 본점 모습. (사진=각 사)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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