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잇따라 발을 빼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중국에서 사실상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마이크론은 중국 데이터센터용 서버 칩 사업에서 철수 수순을 밟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엔비디아, 마이크론의 선례처럼 양국 갈등에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한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항공사진. (사진=삼성전자)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애리조나 TSMC 공장에서 AI 칩 ‘블랙웰’의 대량생산이 시작됐다고 밝혔는데, 자사 AI 칩을 미 본토에서 생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산업 재편 비전이 실현되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그간 H20 등 성능이 제한된 칩을 만들면서까지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려던 엔비디아가 미국의 기조에 발맞춘 것은, 중국에서의 영향력 상실에 따른 대안으로 풀이됩니다. 지난 6일 황 CEO는 “95%였던 시장 점유율이 0%로 떨어졌다”며 “현재 우리는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한 상태”라고 한 바 있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사인 마이크론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3년 중국 정부의 제재로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사업 여건이 악화됐고, 해당 분야에서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국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계속해서 확대하는 가운데 주요 메모리 기업이 이탈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다만 미중 패권 경쟁이 장기화되는 추세에서, 국내 기업에도 부정적인 파급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미국은 미국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검증된 최종사용자’(VEU)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는 등 수출 제한과 핵심 제품의 자국 내 생산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시안(삼성전자), 우시·다롄(SK하이닉스) 등 중국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국내 기업에 여파가 클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중국 역시 HBM 국산화를 추진하며 국내 기업들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중국 대표 메모리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가 내년부터 HBM3E를 양산하려는 등 국내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양상입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미중 분쟁에 휘둘리지 않도록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메모리 최강국으로, 미국이나 중국보다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메모리에서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파운드리에서도 TSMC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주변국의 변수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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