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미가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두고 '수익 배분'과 '투자처 선정권'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미 측이 '전액 선불' 대신 '분납' 조건을 수용했지만, 외환 유출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막판 급물살을 타던 협상이 또다시 중대 분수령을 맞을 전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시간' 위한 긴급 출국…사실상 '빈손 귀국' 마무리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약 2시간 동안 만났지만,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김 실장은 협상 뒤 기자들과 만나 "일부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논의를 더 해야 하고, 막바지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합의문에 담길 수준의 타결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시사한 대목입니다.
두 사람은 러트닉 장관과의 협상을 마치자마자 귀국하는 '당일치기 강행군'을 소화했습니다. 짧은 일정으로 급히 이뤄진 방문이었던 만큼, '남은 1~2가지 쟁점'을 놓고 막판 카드 교환이 오간 자리였다는 분석입니다.
김 실장은 러트닉 장관과 곧 다시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만나기는 어렵다"는 뜻을 밝히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우리에겐 중요한 계기"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핵심 쟁점을 둘러싼 협상은 결국 정상 간 '정치적 결단'에 맡겨지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견은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금에 있어 △수익 배분 △투자처 선정 등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선 미·일 합의가 한·미 협의의 표준이 된 탓입니다.
앞서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를 보면, 원금 회수 후 수익의 약 90%는 미국이, 10%를 일본이 갖는다는 점이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투자가 실패해도 미국 정부는 법적·재정적 책임을 지지 않고(17조) △일본은 투자처 선정권이나 담보권 등 투자자·채권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합니다(11조·17조). △또 일본이 투자를 거부하면 관세 인상과 수익률 하락이라는 이중 페널티가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8조).
일본은 미국이 투자 대상을 통보하면 뒤 45일 안에 현금을 송금(7조)해야 하는 구조도 수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현금 직접투자 비율을 일부 낮추는 대신, '투자처 선정권'과 '수익 배분' 문제에서는 일본과 같은 9대1 조건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투자처 선정에 대한 관여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반도체·배터리 등 우리 핵심 산업에 투입돼야 할 대규모 투자금이 사실상 해외로 유출되기만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대출이나 보증 등 간접투자 비율을 높이더라도, 고위험 투자 구조에선 원금 손실 우려가 여전합니다. 수익 배분은 투자처 결정권과 직결됩니다. 미국이 수익의 90%를 가져가면 자금 운용권도 사실상 미국이 쥐게 되고, 한국 자금은 미국이 지정한 산업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백악관)
현금 완화됐지만 부담 여전…'250억달러 분납안' 부상
현금 비율과 분할 납부에 관한 논의에서 미국이 한 발 물러서면서, 투자처 선정권'과 '수익 배분'에 대한 협상을 놓고 우리 측 고민은 더 깊어질 전망입니다. 정부도 협상의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교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한국이 '매년 250억달러(약 35조원)'씩 8년간 미국에 분할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체 3500억달러 가운데 현금 직접 투자액은 2000억달러으로, 1500억달러는 신용보증 등 간접 투자하는 형태입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2029년 1월까지) 안에 3500억달러를 선불 지급하라는 기존 요구보다 한층 완화된 방침입니다. 현금 투자 비중도 줄어들고, 분할도 허용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년 250억달러도 우리 예산의 5%에 맞먹는 규모로, 한국이 연간 조달 가능한 외환 규모(150억~200억달러)를 상회하는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만약 오는 29일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역 합의가 이뤄질 경우, 해당 내용을 담은 '팩트 시트'(Fact Sheet)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동맹의 현대화, 원자력 협력 강화 등 안보 관련 사안이 함께 발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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