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얼마나 일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전형적 과도기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특히 '주 4일제', '주 4.5일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노동시간 총량은 줄이되, 시장 필요에 따른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노동시간 개혁의 본질은 '단축'이 아닌 '배분'인 만큼 유럽 사례처럼 노사 간 신뢰와 자율적 협의 구조의 문화가 지속가능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10일 고용노동부의 '10월 노동시장 동향'을 분석하면, 지난달 서비스업·돌봄·숙박 등 내수 중심 일자리가 늘었지만 제조업·청년층 고용 부진은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 노동시장이 총량 회복과 구조 불균형이 병존하는 전형적 과도기 모습을 띠고 있는 겁니다. 이는 양적 회복 흐름이라는 숫자보단 고용의 내용이 여전히 불균형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고양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를 살피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양적 회복을 넘어 산업 전환과 인력 재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요성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연화를 향한 시선은 이중구조 심화로 비치는 만큼, 우려심도 높은 상황입니다.
국제노동브리프를 보면, 독일의 경우도 비정규직·파견직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협약의 혜택을 받지 못해 '시간 불평등'이 구조화됐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이는 포괄적 협의 구조와 사회적 안전망 병행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주 52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탄력근로제, 재량근로제 등 다양한 유연근로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 기업과 노동자 현장은 제도의 경직성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법의 규제보다 협약의 설계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을 정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노사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 52시간제에 대한 불만과 주 '4일제나 4.5일제'의 새로운 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핵심은 제도가 아닌 노사관계의 신뢰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제도에도 절차가 없다는 점은 지적 대상입니다.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를 도입할 때도 노동조합과의 협의 절차, 정보 공유, 변경 통보 시점 등이 체계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세부 설계를 현장 노사가 주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법이 시간을 규제하기보단 노사 협의 과정의 제도화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청계천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자도 유연화가 필요하다. 독일에서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확대와 모성 보호 조치들의 강화가 노동시간 유연화를 촉진했다는 사실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사용자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에 노조가 방어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협력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노동시간의 총량, 혹은 법제도로서의 유연한 노동시간 규칙이 아니라 시간 주권을 누가 갖는가의 문제"라며 "지난 정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실패했던 것은 노사관계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노사가 협력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모성 보호에 부합하는 다층적 접근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부 업종과 사업장에서는 주 4.5일제를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터혁신 컨설팅 등을 통해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이를 확산하는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 사회적 대화를 비롯해 노사관계 기반에 대한 정책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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