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사명에서 ‘한국’ 뗀 민낯은?
2025-11-10 06:00:00 2025-11-10 07:47:02
한국증권금융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것은 기자로서가 아니었다. 지금은 신한자산운용에 흡수된 당시 SH자산운용의 서준식 팀장(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이 펴낸 책 『왜 채권쟁이들이 주식으로 돈을 잘 벌까?』 때문이다. 책장에 꽂힌 책을 펴보니 2008년 6월 초판본, 벌써 17년 전 일이다. 
 
이 책에 채권형 주식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의 구루이자 연구 대상인 워렌 버핏 방식의 투자를 설명하면서 예시로 든 기업이 한국증권금융이었다. 현직 펀드매니저라서 상장기업 대신 비상장기업을 앞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증권금융은 그때나 지금이나 단순하게 돈을 잘 버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어 이런 직관적인 설명을 하는 데 적합하다. 
 
그땐 막연히 사명에 ‘한국’이 붙어 있다는 것 때문에 또 독점적 사업을 영위한다는 이유로 한국증권금융이 공기업인 줄 알았다. 주주 명부를 들춰본 건 한참 나중 일이다. 
 
현재 한국증권금융의 최대주주는 11.135% 지분을 보유한 한국거래소다. 그다음이 우리은행(7.687%), 하나은행(6.804%), NH투자증권(6.406%)이다. 공시 주석에 ‘은행단 29.4%, 증권단 38.6%, 보험단 1.3%’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실질적 지배주주는 70%에 가까운 지분을 들고 있는 금융회사라고 봐야 한다. 그중 공기업이라곤 2.521% 지분을 보유한 한국예탁결제원 한 곳이다. 
 
한국증권금융 최대주주인 한국거래소 또한 ‘한국’ 때문에 헷갈릴 수 있는데, 증권사와 은행들이 86.10% 지분을 보유한 민간기업이다. 한국거래소 지분 중 정부 몫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들고 있는 3.03%에 불과하다. 
 
한국거래소는 2009년 한국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등 여러 유관기관을 주식회사 한국거래소로 통합하면서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15년 법적으로 거래소의 독점이 깨지면서 공공기관에서 해제됐다. 그런데도 거래소나 증권금융은 여전히 ‘한국’을 달고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하면서 공기업인 양 행세한다. 온갖 일을 벌여놓고 논란이 생기면 뒷수습은 나 몰라라 뭉개고 흐지부지, 기관장은 낙하산, 방만 경영까지 공기업과 공무원 사회를 빼닮았다. 그러다 가끔 이번 김건희씨와 엮이는 것 같은 사고를 치는 것이다. 
 
관련자들에게 책임은 물었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뭔가 나아질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들의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도 딱히 관리한다는 느낌은 없다. 국정감사 등 그때그때 고비만 넘기자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는 공기업 시절과 다를 게 없어 되돌려야 한다는 비판이 비등해지자 미루고 미뤘던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를 세웠는데, 주식거래를 조금 나눴을지 몰라도 개혁이나 혁신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한 변화는 찾지 못하겠다. 
 
차라리 이럴 바엔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시장의 관리와 감시를 받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 일본, 홍콩, 독일, 싱가포르 모두 증권거래소가 주식 종목으로 상장돼 있다. 한국증권금융만 해도 일반 주주가 2600명을 넘는다. 상장하면 돈만 좇아 부작용이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는 있는데 최소한 낙하산 인사는 줄고 책임경영은 강화될 것이다. 
 
올해 주식시장이 4000선을 넘어서자 다들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한국거래소, 한국증권금융이 4000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한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름에서 ‘한국’을 떼고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