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신냉전'의 국제질서를 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방식이 전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18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대화가 대표적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머지않아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다음 차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력합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행사도 예고되는 건데요. 하지만 계엄과 탄핵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외교 공백'에 따른 '코리아 패싱'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중·러 '밀착' 본격화…순차적 '정상회담' 수순
트럼프 대통령이 북·중·러 중 가장 먼저 대화 상대로 선택한 것은 푸틴 대통령입니다. 17일 <A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 DC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를 방문해 "우리가 평화협정, 휴전,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인데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푸틴 대통령과는 내일 아침 통화할 예정"이라고 공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30일 임시 휴전'에 합의했고, 미국은 러시아와 협상을 이어왔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차단 등을 거론하며 '안보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구체적 통화 시간까지 공개한 건, 실무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휴전을 위한 유의미한 합의가 도출된 영향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도 예고했습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그 아래 최고위급 (중국) 인사들이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에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달여 만에 중국에 2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전쟁'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중국과의 협상이 진전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미·중 정상회담이 추진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오는 6월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보도한 바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공식 확인해 준 셈입니다.
러시아에서 중국까지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북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지난 13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관계를 집권 1기 때처럼 구축할 것이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나는 김정은과 대단한 관계를 맺었었는데, 만약 그때 내가 당선되지 않고 힐러리가 됐다면 북한과의 핵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저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볼 것이다. 그런데 그(김정은)가 '핵 파워'인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7일 러시아 레닌그라드의 이고라 리조트에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외교 공백 맞은 대한민국…한·미 동맹 '흔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일정이 러→중→북으로 순차 진행되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은 탄핵 국면 장기화로 인한 '외교 공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이른바 '코리아 패싱'은 단순한 외교 차원의 전망을 넘어 실제 외교·안보 분야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1월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민감국가)에 동맹국인 한국을 추가했습니다. 비록 민감국가 중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이지만 사실상 북·중·러와 동일 선상에 놓인 셈입니다.
민감국가 설정은 전임 정부인 조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로, 한·미 동맹이 훼손되는 동안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안보 차원의 패싱도 시작됐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의 취임 후 첫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 일정에서 한국은 제외됐습니다. 미 국방부 장관이 주요 동맹국이자 북한 핵 위협의 1차 방어선인 한국을 순방지에서 뺀 겁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국방장관인 로이드 오스틴 전 장관도 마지막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포함했다, 비상계엄 이후 방문을 취소한 바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패싱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외교 목표는 '비핵화' 없는 제재 해제인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단계적 비핵화' 방식의 접근이 불가피합니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을 거듭해서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당시 대한민국은 '중재자론'과 '운전자론'을 꺼내들었습니다. 하지만 집권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패싱이 기정 사실화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 중재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핵추진잠수함 건조 현장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는 기술 이전 의혹을 받는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우회적으로 과시한 겁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수순으로 예고되는 북·미 정상회담에 있어 북한이 러시아의 존재를 활용하는 건데요. 러시아 중재론이 힘을 받는 이유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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