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더 내고 더 받는' 내용의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이 여야 극적 합의로 국회 문턱을 통과했습니다. 역대 세 번째 연금개혁으로, 연금 부채가 하루에 885억원씩 쌓이는 상황에서 여야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으로 일단 급한 불을 껐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금 고갈 시점이 조금 미뤄졌을 뿐, 여전히 언젠가는 바닥이 나는 상황은 똑같습니다. 결국 연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필요한데요. 경제와 인구 상황에 따라 연금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시스템 도입이 핵심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다만 자동조정장치 등을 포함한 구조개혁 논의는 모수개혁보다 이해관계가 더 복잡한 만큼 더욱 험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청년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반발도 여전해 향후 난항이 예상됩니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국회 통과
여야가 합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보면 '내는 돈'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오릅니다. 내년부터 해마다 0.5%포인트씩 8년간 인상됩니다.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40%(2028년 기준·올해는 41.5%)에서 내년부터 43%로 인상됩니다. 예를 들어 월 309만원을 받는 직장인 기준으로, 매달 6만1800원의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수급 연령이 되면 매달 약 9만2000원의 연금을 더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여야는 또 군 복무를 이행하거나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군·출산 크레디트도 대폭 확대했습니다. 군 복무 크레디트는 현행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립니다. 둘째 자녀부터 최대 50개월까지 가입 기간을 보장하는 출산 크레디트도 첫째 자녀부터 12개월을 인정해주고 상한은 없애기로 했습니다. 보험료 지원 대상을 저소득 지역 가입자로 확대하고, 국가가 국민연금의 안정적·지속적인 지급을 보장하는 지급 보장 문구도 개정안에 명문화했습니다.
이번 연금개혁은 지난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한 이후 역대 세 번째입니다. 소득대체율을 50%에서 점진적으로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한 2007년 '2차 연금개혁' 이후 18년 만입니다. 보험료율이 인상되는 것은 1998년 '1차 연금개혁'(보험료율 3%→9% 점진적 인상) 이후 28년 만입니다. 이번 개혁으로 연금 적자 전환 시점은 2041년에서 2048년으로,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64년으로 각각 7년, 9년 늦춰지게 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반쪽짜리' 개혁…'자동조정장치' 최대 쟁점
이번 모수개혁이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는 완충 역할을 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금이 안정되게 유지되려면 더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각에서 기금 고갈 시점만 몇 년 늦출 뿐, 구조개혁은 손도 못 댄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때문에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점점 줄고 수급자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같은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여야는 구조개혁 논의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로 넘겼는데, 연금특위에서 논의될 최대 쟁점은 자동조정장치 도입 여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조정장치는 연금 재정 적자가 예상될 때 자동으로 받는 돈 액수를 줄이는 제도입니다. 정부·여당은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자동조정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민주당은 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효과를 떨어뜨리는 '자동삭감장치'라며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시민단체 등 각계에서도 자동조정장치를 두고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합의점을 찾는 데 험로가 예상됩니다.
청년 세대 지갑 열어 퍼주는 '연금 개악'
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반발도 여전합니다. 청년 세대의 희생을 전제로 기성세대의 노후 부담을 떠넘긴 미완의 개혁이라는 게 반대 목소리의 핵심입니다. 결국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떠넘기지 않으려면 지속가능한 구조개혁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87년생인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이것은 개혁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정치 기득권을 장악한 기성세대의 협잡"이라며 "오늘 상정할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공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당내 중진인 안철수 의원도 "반쪽짜리 개혁에도 못 미친다"며 "이번 개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야 한다"며 구조개혁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국민의힘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개혁 아닌 개악"이라며 총사퇴하기도 했습니다.
손영광 연금개혁청년행동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득대체율 43% 인상으로 미래 세대에게 927조원의 부채라는 큰 선물을 선사했다"며 "보험료도 올라서 젊은 사람들은 평생 내야 할 보험료가 생애 수천만원이 증가했지만 연금 고갈 시기는 겨우 9년 연장돼서 노인이 됐을 때 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손 대표는 또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는 수천조원의 부채를 세금으로 보전하겠다는 뜻이다. 미래에 국민연금 부채를 갚기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미래 세대"라고 꼬집으며 "청년들과 미래 세대의 입장을 대표해 납득할 수 없는 연금 개악 입법을 강행한 여야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번 연금제도 개편은 50세 이상 사람들이 사망할 때까지 안심하고 연금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뒀다"며 "즉, 50대 이상 연령층의 연금 기득권을 공고히 한 제도 개편이기에 청년층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자동조정장치 도입하면 어느 정도 재정 안정을 이룰 수 있는데, 그걸 미루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다 떠넘기는 꼴"이라며 "자동조정장치를 하루빨리 도입하되, 일본식은 맞지 않으니 유럽 국가 방식, 스웨덴식으로 바로 가기는 어렵고 핀란드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수영(왼쪽) 국민의힘 의원과 손영광(왼쪽 네 번째) 연금개혁청년행동 대표 등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연금개혁 법안 통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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