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송정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사들의 공공택지 '벌떼 입찰'에 칼을 빼 들었지만 최근 호반건설에 과징금 60%를 감면하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다른 중견 건설사들의 제재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됩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정부가 공공택지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징금 부과가 이뤄지며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27일 호반건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호반건설의 과징금은 기존 608억원에서 243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우미건설, 중흥건설, 대방건설 등도 벌떼 입찰에 따른 제재를 받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호반건설에 대한 법적인 판단과 사실관계가 동일하다면 선례를 바탕으로 건설사 입장에서 유리한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공정위가 호반건설의 위법 사항이라고 주장한 일부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라면서 "향후 관련 재판이 이뤄진다면 구체적인 사정을 따져 입찰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그에 따라 부과된 과징금이나 대표 기소 등 법적 제재가 합당한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23년 8월 참여연대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호반건설 총수일가 업무상 배임혐의 등 고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우미·중흥도 과징금 처분 대기…규제 완화 부작용 우려도
대방건설은 벌떼 입찰을 통해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로 구찬우 대표가 불구속 기소됐는데요. 공정위는 과징금 205억원을 부과한 데 이어 대방건설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제일건설은 벌떼 입찰로 97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으며, 벌떼 입찰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은 우미건설과 중흥건설도 조만간 처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처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현재로서 유리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최근 정부가 공공택지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에서 벌떼 입찰에 대한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건설 경기 위축으로 공공택지 유찰이 계속되면서 정부는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가능한 모기업과 계열사의 수를 1개사로 제한하는 1사1필지 제도를 올해까지만 시행할 방침인데요.
앞서 국토교통부는 공공택지 벌떼 입찰 근절 방안 대책으로 LH공공택지 입찰에 1사1필지 제도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벌떼 입찰을 범죄로 규정하고 엄벌 의지를 드러냈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기조죠. 1사1필지 제도가 폐지되면 과밀억제권역인 3기 신도시 등에서도 공공택지 입찰 제한이 풀릴 것으로 보이는데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난해 공공택지 유찰액이 1조7600여억원으로 통계 집계 이래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벌떼 입찰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이어지면 공공택지 유찰이 늘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재무구조, 정부는 주택 공급 계획에 악영향을 미쳐 난감할 것"이라면서 "보완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반등 기미를 보이면 당시 부작용과 문제는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호반건설은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243억원 과징금 부과도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재판부는 공정위가 호반건설의 위법 사항이라며 지적한 4가지 사항 중 공공택지 전매와 입찰신청금 무상대여 행위 등에 대해선 부과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이 과징금 전액 취소 판단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징금 전액 취소 판단이 내려지면 벌떼 입찰의 길을 완전히 열어버리게 되는 것으로 이는 경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면서 "과징금 일부 취소 판결을 내렸다는 선례가 나왔기 때문에 향후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다른 중견사들 역시 일련의 과정이 비슷하면 선례에 비춰 일부 승소 판결 등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연·송정은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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