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전이하는 암세포의 비밀을 풀다
세포 이동의 자율주행 메커니즘 규명
KAIST-존스홉킨스대 공동연구 성과
2025-11-13 09:58:32 2025-11-13 14:26:59
면역세포가 병원체를 찾아간다거나, 상처 회복을 위해 세포가 이동한다거나, 암세포가 퍼져 나가는 것은 세포의 이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반드시 외부 자극이나 신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외부에서 별다른 유도 신호가 없어도 세포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바꾸고, 탐색하며 이동하는 메커니즘이 KAIST가 주도한 국제 공동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외부 자극 없이 세포가 Rho 신호전달 단백질의 작용으로 스스로 방향을 바꾸는 원리를 보여주는 모식도. (이미지=KAIST)
 
KAIST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은 바이오 및 뇌공학과 조광현 석좌교수 연구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이갑상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세포가 외부의 신호 없이도 스스로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자율주행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습니다. 
 
이번에 KAIST 공동연구팀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 ‘Rho GTPase-효과기 복합체가 세포 이동 행동을 조절한다(Rho GTPase-effector ensemble governs cell migration behavior)’는 스스로 탐색하며 이동하는 세포의 내부 메커니즘을 규명한 연구입니다. 세포골격의 동적 재구성과 세포 이동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Rho GTPase는 세포의 형태와 운동을 제어하는 분자 스위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Rho GTPase가 세포 움직임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단백질과 함께 작동하여, 세포가 계속 직진할지 또는 방향을 바꿀지를 내부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단백질 상호작용 시각화하는 신기술
 
세포는 외부에서 뚜렷한 신호가 없어도 스스로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연구팀은 INSPECT라는 새로운 영상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INSPECT(Intracellular Separation of Protein Engineered Condensation Technique)는 세포 안 단백질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응집체(condensate) 형태로 영상화하는 기술입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수백 가지 Rho GTPase와 그 작용 단백질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작용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연구 결과, 세포가 스스로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두 가지 핵심 원리가 밝혀졌습니다. 첫 번째는 세포가 ‘앞’과 ‘뒤’를 정하는 과정으로, FMNL과 Cdc42 단백질이 방향을 결정합니다. 두 번째는 Rac1과 ROCK 단백질이 함께 작용해 세포 앞부분에 반원 모양으로 형성되는 미세한 근육 같은 구조인 ‘아크 스트레스 섬유’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세포가 스스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두 과정이 함께 작동하면서, 세포는 단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고, 주변을 탐색하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세포 이동은 상처 회복, 면역세포의 이동, 발달 과정 등 다양한 생리현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컨대 상처 부위로 이동하는 세포는 외부 신호 없이도 스스로 앞뒤를 정하고 움직여야 빠르고 효율적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 이동 능력은 암세포 전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외부 자극 없이 환경을 탐색하고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암세포가 정상조직을 벗어나 퍼지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세포가 외부 신호 없이도 방향을 조절한다는 것은 생체공학과 의료 응용 측면에서도 시사점이 큽니다. 인공조직이나 줄기세포 치료에서 세포가 스스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도록 유도할 때, 이러한 내부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설계가 한층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KAIST 허원도 교수, KAIST 이희영 박사후연구원(제1저자), KAIST 조광현 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이갑상 교수, IBS 이상규 박사, LIBD 김동산 박사, 휴룩스 서예지 박사(공동 제1저자). (사진=KAIST)
 
암 전이 등 질병 연구에 새 단서
 
연구를 주도한 허원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 이동이 무작위적인 운동이 아니라, Rho 신호전달 단백질과 세포 이동 관련 단백질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내재적 프로그램에 의해 정밀하게 제어된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라며, “새롭게 개발한 INSPECT 기술은 세포 내 단백질 상호작용을 시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암 전이와 신경세포 이동 등 다양한 생명현상과 질병의 분자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폭넓게 활용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KAIST와 국제 공동 연구진은 세포가 스스로 방향을 정해 움직이는 원리를 규명했습니다. 이는 향후 암 전이와 면역 질환 연구,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과제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연구는 주로 2차원 평면 기질(substrate) 위에서 진행되었지만, 실제 생체 조직에서는 세포가 3차원 환경에서 움직입니다. 또한, 세포 안 신호 네트워크와 주변 환경 감지, 세포 간 상호작용이 이 내부 프로그램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도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내부 메커니즘을 임상적으로 조절하거나 활용하는 전략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상처 치유를 촉진하거나 암세포 이동을 억제하는 측면에서 세포 신호 체계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중요한 연구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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