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가 국내 주요 정책금융기관의 퇴직 임·직원의 자회사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한국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등에서 퇴직한 임직원이 자회사나 출자회사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시너지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동시에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5년간 97건 재취업…산은·기은 최다
28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K-정책금융연구소의 평가 대상인 13개 정책금융기관 중 최근 5년간(2019~2024년) 퇴직 임·직원이 자회사나 출자회사로 재취업한 사례는 6개 정책금융기관에서 총 97건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업은행이 54건으로 가장 많았고, 산업은행 22건, 한국수출입은행 11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5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3건, 기술보증기금 2건 순입니다.
이는 지난해 9월 K-정책금융연구소의 퇴직 임직원 자회사 재취업 현황 분석(2024년 1분기 기준)에 이은 두 번째 조사 결과입니다. 지난해 2·3·4분기를 거치며 기은에서 11건, 수은에서 4건, 산은에서 1건이 각각 증가했고, 중진공과 기보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캠코는 지난해 조사에서는 평가 대상 기관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산은과 기은에서는 퇴직한 부행장급 인사들이 자회사 대표나 부사장으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산은은 최근 5년간 9명의 전직 부행장이 산은캐피탈, KDB인프라자산운용 등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건열·양기호·이병호 전 부행장은 산은캐피탈 부사장을 지낸 뒤 대표 자리까지 올랐으며, 안영규 전 부행장은 현재 산은캐피탈 부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배영운·장병돈 전 부행장은 KDB인프라자산운용 대표를 역임했으며, 이대현·최대현 전 수석부행장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지냈습니다.
기은 역시 5년간 자회사로 자리를 옮긴 전 부행장은 14명에 달합니다. IBK연금보험(양춘근·서치길), IBK캐피탈(최현숙), IBK신용정보(김창호), IBK서비스(이상국), IBK저축은행(서정학·김재홍), IBK시스템(김윤기), IBK자산운용(전규백·정재섭), IBK투자증권(서정학·손현상·감성한) 등이 대표 또는 부사장으로 재취업했습니다.
법망 피하는 '회전문 인사'
잇단 재취업 논란 중 하나는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 제도의 실효성 문제입니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에 따르면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의 직원인 '취업심사 대상자'는 퇴직 후 3년간 취업심사 대상기관에 재취업할 수 없습니다. 퇴직 공직자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공정한 직무수행을 방해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인데요. 다만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퇴직 전 5년간 소속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취업하려는 기관 간 밀접한 관련성이 없음을 확인받거나 취업 승인을 받으면 재취업이 가능합니다.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31조에 따르면 정책금융기관 중 한국무역보험공사만이 취업심사 대상자로 명시돼 있습니다. 무역보험법에 따른 무보 2급 이상 직원이 해당하는데요. 반면 무보를 제외한 정책금융기관은 공직자윤리법 17조가 정한 '공직유관단체 임원'만이 취업대상 대상자로 지정돼 있어 이사·감사 이상의 상근 임원만이 취업 심사를 받게 됩니다. 결국 무보 이외의 기관에 재직한 이들은 상근 임원이 아닌 한 심사 대상 자체가 아니거나, 심사에서 제외되는 자회사로 이동해 법적 제한을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산은의 이대현·최대현 전 수석부행장이 대표로 재직했던 KDB인베스트먼트는 2023년부터 취업 심사 대상 기관으로 지정됐으나, 이들이 이동했던 시점에는 심사 대상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수은의 신덕용 전 상임이사 또한 3년 전 수은인니금융과 지난해 수은싱가포르로 각각 재취업했으나 두 곳 모두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이 아닙니다. 김병수 중진공 전 상임이사가 재취업한 중진공파트너스와 정진수 전 부이사장이 옮긴 중소기업유통센터 역시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이 아닙니다.
"자회사 독립성 개선해야"…낙하산에 대한 내부 불만도
모회사와 자회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보은성 인사로 인해 자회사 내부의 승진 기회가 줄어들고 경영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2년 발간한 '공공부문 자회사 거버넌스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자회사의 독립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내부 견제 기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모기관 출신이 모·자회사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업무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모기관 출신을 무조건 배제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다만 자회사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 측면에서 외부 전문가의 영입도 필요하므로 자회사 임원 선임 시 공모 절차를 강화하고 모기관의 당연직 임원 선임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보은성·낙하산 인사라는 부분에 있어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회사의 현안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서도 "다만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고 낙하산 인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모회사에서 더 이상 승진이 안 되니 보은성 인사로 자회사 임원 등으로 내려가는 사례가 있는데, 자회사 직원들 입장에서는 내부 승진으로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지는 셈"이라며 "이로 인해 자회사 내부에선 사기 저하와 같은 불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책금융기관은 모회사와 자회사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결정이라는 입장입니다. 기은 관계자는 "기업은행과 자회사 간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경쟁 은행 대비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산은 관계자도 "금융 자회사는 산업은행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라며 "모회사 경영전략 공유와 협업 효과 극대화를 통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금융 및 조직 관리에 전문성을 갖춘 퇴직 임직원을 선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5년간(2019~2024년) 퇴직 임·직원이 자회사나 출자회사로 재취업한 사례는 기업은행이 54건, 산업은행이 22건을 기록했다. 사진은 산업은행(왼쪽), 기업은행 전경. (사진=산업은행, 기업은행)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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