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부과 발표를 앞두고 국가별 무역장벽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내용은 총 7장에 걸쳐 서술했는데, 30개월 이상 수입 쇠고기 월령 제한을 비롯해 수입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네트워크망 사용료 등 주로 비관세 무역장벽을 정조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등을 무역장벽으로 처음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 근거로 삼는 동시에 향후 시장 개방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는 미국 측과 다양한 채널로 협의해 상호관세에 한국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입니다.
한국 분량 7장…7가지 분야 거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1일(현지시간) '2025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미국 수출업체가 직면한 외국 무역장벽과 이러한 장벽을 줄이기 위한 USTR의 과제와 성과를 설명하는 연례 보고서로, 3월 말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보고서는 매년 제출하는 문서로 그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있어 예년보다 의미가 크다는 평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관세·비관세, 규제, 세금, 환율 조작 여부 등을 모두 살핀 후 오는 2일부터 나라별 상호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미국의 상호관세는 각국의 대미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두루 감안해 책정될 예정입니다.
올해 보고서는 총 397페이지 분량으로, 한국에 관해서는 약 7장 분량으로 서술했습니다. 보고서는 △기술 및 위생 △공공 조달 △지적재산권 △서비스업 △전자상거래 △자본투자 △기타(자동차 및 제약) 등 7가지 분야의 무역장벽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미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방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USTR 보고서는 18건을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한 반면 올해는 21건으로 늘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사실상 전 산업 망라…절충교역 등 첫 지적
보고서는 자국 업계 의견을 담은 무역 문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습니다. 우선 2008년 한·미간 쇠고기 시장 개방 합의 때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소에서 나온 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을 "과도기적 조치"로 규정하며 "16년간 유지됐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한국이 월령과 관계없이 육포, 소시지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거론했습니다.
아울러 보고서는 "농업·생명공학 관련 한국의 규제 시스템은 미국 농산품에 도전"이라며 새로운 바이오기술 제품에 대한 허가 과정이 과도한 검토와 데이터 요구로 인해 지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전력 분야에 대한 투자 제한 조치를 언급하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원전에 대한 외국인 소유가 금지돼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수력과 화력, 태양열 등에 대한 소유 문제만 언급했습니다.
배출 부품 규제 등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습니다. 보고서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한국 자동차 시장 접근성 확대는 미국의 주요 우선 과제 중 하나"라며 "미국 정부는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가스 관련 부품(ERCs) 규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해 왔다"고 언급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미국 측이 앞으로 자동차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국방 절충교역도 새롭게 언급됐습니다. 절충교역은 외국에서 1000만달러 이상의 무기나 군수품을 살 때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이전 등을 받아내는 교역 방식을 의미합니다. USTR은 이를 자유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간주했습니다. 특정 기술의 이전을 강제하는 방식은 미국 방산업체에 불공정한 조건이라는 입장입니다.
이 외에도 USTR은 한국의 디지털 무역장벽 사례를 집중적으로 지목했습니다.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된 상황을 지적하며 "일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콘텐츠 공급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콘텐츠 제공업자들의 비용 납부는 한국 경쟁자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 법안도 특정 외국 기업, 특히 미국 대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차별적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정부 "2023년보다 적은 수준…우리 측 입장 설명"
문제는 이번 보고서가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에 앞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보고서에 망라된 비관세 장벽들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한국에 책정할 세율의 설명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현대 역사상 어떤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만큼 미국 수출업체가 직면한 광범위하고 해로운 외국 무역 장벽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의 리더십 아래 이 행정부는 이러한 불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이지 않은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공정성을 회복하고 열심히 일하는 미국 기업과 근로자를 세계 시장에서 우선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미국이 지목한 비관세 장벽들은 국방 절충교역 등을 제외하면 매년 제기돼 왔던 사안들로, 예년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다고 자평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제기된 분야 대부분이 기존 무역장벽 보고서 및 미국 이해관계자가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사항인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한국 관련 언급이 대폭 줄었던 지난해에 비해서는 분량이 소폭 증가했으나 40여건의 지적사항이 포함됐던 2023년 이전에 비해서는 적은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측 과는 실무 채널, 한미 FTA 이행위원회·작업반 등을 통해 협의하며 우리 비관세조치 관련 진전 노력을 계속해서 설명할 것"이라면서 "주요 현안에 대한 우리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제1차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이번 조치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각 산업, 자동차 산업을 포함해서 각 산업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 조치도, 또 긴급하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김태은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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