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증권사들의 기업공개(IPO) 주관 실적에서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스팩(SPAC)을 제외한 IPO 주관 실적에서 다수의 중소형사는 '0건'에 그친 반면, 빅5 대형사는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증시 침체와 심사 기준 강화 속에 대형사 쏠림이 이어지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증권, 유안타증권, 현대차증권, 상상인증권, iM투자증권, 교보증권은 2024년 부터 올해 1분기까지 15개월째 IPO 주관 실적 0건(스팩 제외)을 기록했습니다. 이중 SK증권은 이번주 공모가 예정된 로킷헬스케어 대표 주관사로, iM투자증권은 나우로보틱스 공동 주관사로 상장을 앞두고 있으나 지금 기준으론 전무합니다. 이 외에도 하나증권, 키움증권, 한화투자증권 역시 올해 1분기 현재 스팩을 제외한 IPO 주관 실적이 없습니다.
반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 빅5 대형사는 최근 2년간 전체 IPO 건수의 80% 이상을 주관했으며, 올 1분기에는 그 비중이 83.3%까지 확대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상장 예비기업들의 대형사 선호 현상이 구조적으로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인력·조직 등 인프라 갖춘 대형사 쏠림현상 심화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IPO는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딜을 경험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총액 인수, 마케팅 인프라, 해외 네트워크, 리서치 조직 등은 대형사만 갖출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발행사들은 증권사 이름보다 어떤 팀, 어떤 사람과 일할 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며 "잘 하는 인력들이 대형사에 몰려 있는 이상 이 구조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발행사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 상장한 발행사 대표는 "청약 흥행과 안정적인 진행을 고려하면 경험 많은 대형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 차이도 크지 않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대형사를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IPO 시장에서는 대형 딜이 감소하면서 대형사가 중소형 규모의 딜까지 흡수, 증권사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를 대어라고 부르지만 과도한 해석"이라며 "올해 실질적인 빅딜은 DN솔루션즈가 유일하며 이마저도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등 대형사가 주관했다"고 말했습니다.
중소형사, 틈새 전략으로 활로 모색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중소형사들은 틈새 전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신증권은 올해 현재 LG CNS(공동주관)과 한텍 등 2건의 IPO를 완료했으며, 거래소 심사 승인을 받은 6건의 딜을 추가로 진행 중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종투사 인가를 통해 자본력과 인수 역량을 강화했고 대기업 네트워크와 꾸준한 영업활동을 통해 딜 수임 역량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영증권은 상반기 내 엘케이켐과 쎄크의 상장을 완료할 예정이며, 대진첨단소재, 링크솔루션 등도 IPO를 준비 중입니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장기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건전성과 수익성을 고려한 선별적 IPO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외 중소형사들도 특례상장, 직상장, 주식발행시장(ECM) 등에서 하반기 반등을 노리고 있습니다. 유안타증권은 "IPO는 긴 호흡이 필요한 만큼 각 팀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화투자증권은 바이오앱 심사와 함께 연내 3건의 상장을 준비 중이며, 교보증권은 연내 1~2건의 직상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iM투자증권과 현대차증권의 경우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상상인증권은 "현재 공개할 만한 IPO 계획은 없다"며 "기업금융(IB)와 채권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소형사들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IPO 시장의 양극화는 당분간 심화될 전망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소형사들이 틈새시장에서 기회를 찾기 어려운 구조이며 뚜렷한 경쟁력이 없으면 부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1분기 상장한 기업들의 공모청약 일반 경쟁률은 평균 708대 1로 전년 대비 31% 하락했습니다. 고평가 부담에 기업들이 제시한 희망공모가의 상단을 초과해 공모가가 정해진 사례도 없었습니다. 일부 종목이 선전했지만 시장 전체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전면 재개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등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분기 IPO 시장은 뚜렷한 침체를 나타냈다"며 "투자심리 위축으로 인해 시장 반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1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KRX) 컨퍼런스홀에서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가 열렸다.(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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