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조합 입김이 거세지면서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캠프에서도 점포 폐쇄 절차 강화, 계열사 간 정보공유 금지 등 노조 요구를 공약에 반영하고 있는데요. 금융업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금융산업 발전 정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거세진 금융노조 입김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대선 후보들이 주요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금융산업 발전 관련 공약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나 국책은행 지방 이전과 같은 아젠다도 제외됐습니다. 대선이 임박한 만큼 국민체감도가 높은 공약을 추리다보니 민생 회복이나 서민금융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는 전언입니다.
다만 그 틈을 비집고 금융권 노조가 적극적으로 정책 요구를 하고 있어 금융권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민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약속하면서 금융 규제 강화와 금융 공공성 강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분별한 규제 완화 방지,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금융 안정성 강화, 금융지주사의 자회사 부당 개입 금지, 금융권 점포 폐쇄 절차 강화 등이 담긴 정책 협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노조의 입김이 커지면서 앞으로 경영이나 인사 등에 발목을 잡힐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금융노조는 김광수 전 은행연합회장이 대선 후보의 정책자문기구에 참여한 것을 두고서도 즉각 철회하라며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회장이 은행 점포 폐쇄를 주도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인데, 은행권에서는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금융노조의 이 같은 반대 배경에는 은행 점포 폐쇄가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은행들이 점포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적금과 대출 등 대부분 금융 업무가 비대면 채널에서 이뤄지고 있고 점포 내점 고객 수는 줄고 있다"며 "점포 감축을 무작정 반대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찾아야할 것 아니냐"고 토로했습니다.
금융당국이 점포 폐쇄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은행대리업' 제도도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은행 대리업은 예·적금, 대출, 이체 등 환거래에 해당하는 은행 고유업무를 우체국 등 타 기관에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요. 은행법 개정 등 국회 법안 처리가 전제돼야 하는데 노조 반대를 넘어설 수 있을 지 불투명합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은행 점포 폐쇄 절차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를 찾은 시민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비이자 이익 확대를 위한 겸영업무 확대, 금융지주와 계열사 간 정보 공유 등 금융권 숙원사업 해결도 요원해졌습니다. 금융지주는 2014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으로 계열사와 영업 목적의 고객정보 공유가 불가능합니다.
2013년 카드사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 후 계열사 간 고객정보 공유는 '내부 경영관리 목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은행·보험·증권·카드 등 계열사로부터 확보한 고객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영업 목적'의 고객정보 활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정치논리 장악 우려"
금융그룹의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권은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이자이익을 늘리면 이자장사한다는 비판을 받고, 비이자이익을 늘리자니 각종 장애물이 있어서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비이자이익을 늘리고자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민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은행법 개정안은 대출 금리 산정 과정에서 가산 금리에 보험료·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지역신용보증재단 출연금은 출연요율의 50% 이상을 대출금리에 포함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겼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산금리 산정의 투명성 강화'를 주요 금융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자이익에 기대고 있는 수익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 분리) 완화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행 은행법상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비금융사의 지분을 각각 5%와 15%까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은행들은 줄곧 투자 제한 빗장을 풀어 혁신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금융당국도 현 정부 내내 금산분리 완화 논의에 대해 줄곧 운을 떼었습니다. 다만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임기 내내 답보 상태입니다.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후보측에서는 금산분리 강화 등 기존 규제 강화 논리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민주당 강령에도 "금산분리 원칙을 견지해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고 경제적 피해는 억제시킨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산분리 완화는 재벌과 은행 간 이슈가 아니라 전 산업 육성 측면에서 고려봐야할 만한 사안인데 정치 논리에만 매몰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금융권 노조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금융권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 금융노조가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