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25사단 장병들이 지난 3월 12일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다목적무인차량을 활용해 대량살상무기 제거 훈련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방위사업청이 500억원 규모의 '다목적무인차량 구매사업'에서 제출한 성적서를 바꾸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를 허용한다면 방사청 개청 이후 1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어서 '특정 업체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23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방사청은 이 사업이 진행된 지 1년이 넘은 시점에서 업체들이 제안서를 통해 제출한 기존 성적서를 무시하고 새로운 성적서를 받겠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고 결과에 따라 방사청의 방침이 바뀐다면 평가의 공정·객관성 논란은 물론 업체 입맛에 맞게 언제든 성적서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최초의 선례가 됩니다. 아울러 사업 지연으로 인한 전력 공백도 우려됩니다.
앞서 방사청은 지난해 4월 육군과 해병대에서 사용할 다목적무인차량을 확보하기 위해 약 500억원 규모의 '다목적무인차량 구매사업'을 공고했습니다. 이 사업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두 업체의 장비 모두 시험평가 대상 기종으로 선정돼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군 시험평가를 거쳐 지난 12일 두 회사 모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순항 중이던 다목적무인차량 구매사업은 군 시험평가 종료 후 방사청의 최대 성능 상대평가 과정에서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한 업체가 방사청에 '기존 제안서에 제출한 성능 수치를 수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해진 절차를 따라 작성, 제출한 제안서 내의 성적서를 바꿔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 것입니다.
방사청은 당초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최근 들어 성능 수치를 다시 제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는 것을 검토한 것입니다.
방사청 훈령인 방위사업 관리규정과 방위력 개선사업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 기준에 따르면 '제안서 접수 후 수정 및 보완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제안서 내용 미비에 대한 책임은 해당 업체에 있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방사청이 공개한 이번 사업의 제안 요청서에도 같은 내용이 명백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방사청은 사업공고 전인 지난해 초에는 연구용역비 약 2500만원을 들여 다목적무인차량 평가 방안까지 도출한 바 있습니다. 비용을 들여 도출한 평가 방안까지 무시하는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방사청이 입장을 변경한 배경에는 '더 좋은 성능의 장비를 군에 전력화한다'라는 명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제안서 내용, 군 시험평가 결과, 가격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 평가한다는 큰 틀은 내버려둔 채 평가 마지막 단계인 단 6개 항목에 집중하는 모양새여서 좋은 장비를 가려낸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상대평가로 가릴 최대 성능 6개 항목은 공인 시험장에서 각 업체가 제품을 가동해 최대의 성능을 발휘한 뒤 제안서에 그 수치를 기재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대성능 수치를 다시 적겠다는 것은 앞서 적어낸 최대성능 수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모순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이후 제안서 제출 후 추가 자료 제출을 통해 제안서 수정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사업 진행 중 제안서 수정을 용인하면 사업 진행 경과에 따라 업체들이 무분별하게 제안 내용을 수정해 평가의 공정성 및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방사청 출신의 국내 유수의 로펌 소속 변호사는 "방사청이 만일 제안서 수정을 용인한다면 이는 방사청이 19년 동안 지켜온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평가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업체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방사청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선례를 남기면 이후 방사청이 진행하는 다른 사업에서도 동일한 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업 지연도 우려됩니다. 업체들이 성능을 다시 제출하려면 해당 항목에 대한 공인 성적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수행했던 성능시험을 반복해야 합니다. 다시 제출된 성적서에 대해 양측 이견이 발생하면 동일한 절차를 또다시 반복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내년 전력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방사청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정과 원칙대로 진행하면 될 일을 어렵게 가고 있는 것 같다"며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고 사업 평가 운영 때문에 첨단 무기의 전력화가 지연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 사안과 관련해 법무 검토를 마친 건 맞고 이 결과를 반영해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며 "아직 최종 의사결정을 하지 않은 만큼 결론을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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