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이 예정된 홈플러스 부천소사점. (사진=이수정 기자)
[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3시, 폐점이 확정된 홈플러스 일산점은 한산했습니다. 텅 빈 몫 좋은 1층 상가와 매장 입구에 걸린 '노동자, 자영업자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가 홈플러스 일산점의 현 주소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최근 홈플러스는 회생이 불가능한 15개 점포를 폐점하고 본사 직원을 상대로 무급휴직 희망자를 받는 등 '생존 경영 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가운데 폐점이 예정된 곳은 △서울 시흥점 △일산점 △인천 계산점 △안산 고잔점 △수원 원천점 △화성 동탄점 △천안 신방점 △대전 문화점 △대구 동촌점 △부산 장림점 △부산 감만점 △울산 북구점 △울산 남구점 등입니다.
폐점 소식이 전해진 매장에서 가장 무거운 표정을 짓는 건 직원들이었습니다. 오후 시간대 가장 사람이 많을 법한 식품 코너를 방문했지만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모습이었습니다. 매장 직원들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도 더 이상 물건이 입고되지 않아, 군데군데 구멍이 나버린 매대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매장에서 만난 직원 A(50대)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불안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A씨는 "물건은 이미 추가로 들어오지 않고 있고, 직원들을 상대로 어느 지점으로 가고 싶냐는 설문을 돌린 상황"며 "회사에서는 짜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지원을 해도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청소 업무를 하는 직원 B(60대)씨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폐점 이후 행보를 묻는 기자에게 B씨는 "글쎄,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다른 지점에도 이미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자리가 있을 거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홈플러스에서 별로도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홈플러스 일산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C(50대)씨는 "홈플러스에서 구체적인 보상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매출에 3개월치를 준다는 말이 있긴 했는데, 폐점 소식 이후 가게들이 하나 둘 빠지니 안 그래도 없던 손님이 더 줄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보상을 받을 때 이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폐점이 예정된 홈플러스 일산점에 물건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아 제품 코너 일부 매대가 비어 있다. (사진=이수정 기자)
실제 이번 폐점에 이어 더 많은 지점이 청산된다면 직접 고용 인원을 포함한 약 22만명의 생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이에 홈플러스는 더 큰 충격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M&A(인수합병)가 적기에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홈플러스 폐점은 노동자 생계 문제를 넘어 주변 상권과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홈플러스 일산점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는 "일산역 주변은 폐점과 별개로 예전보다 상권이 죽은 곳"이라면서도 "아무래도 주변에 입주를 희망하는 손님들은 홈플러스 폐점이 당연히 반갑지 않은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진짜 문제는 폐점하면 저 큰 건물이 최소 몇 년은 비어 있게 될 텐데, 그러면 주변 상권이 더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습니다.
폐점 리스트에 오른 홈플러스 부천소사점은 주민들이 울상입니다. 같은 날 오후 부천소사점은 폐점 예정 기간이 1년가량 남은 만큼 저녁 장을 보러 온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홈플러스 부천소사점은 인천 역곡역과 소사역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주만들이 즐겨 찾는 대형마트입니다. 지난 7월 홈플러스 부천상동점 폐점 이후, 이 곳 마저 없어지면 부천에 남은 대형마트는 중동과 심곡본동에 있는 이마트 두 곳뿐입니다.
홈플러스 부천소사점에서 만난 주부 D(60대)씨는 "요즘 아파트 반상회에서는 홈플러스가 없어지면 너무 불편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주요 이슈"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폐점한 뒤에는 뒤쪽 시장이나 개인 마트를 가게될 텐데, 대형마트만큼 할인률이 높다거나 혜택을 주는 건 아니라는 점이 가장 불만스럽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난달 31일 폐점한 안산 선부점의 가전제품 판매 코너. 폐점이 예정된 지난 8월 오후 대부분 물건이 빠져 매대가 텅 비어 있는 모습. (사진= 김충범 기자)
부천 소사역 인근 부동산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는 "최근 홈플러스 폐점에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며 "원래 소사역 아파트 주민들은 홈플러스를 애용했는데, 소사점이 없어지면 대형마트를 가기 위해 지하철 두세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실수요자들에게 마트 등 편의 시설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