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가자 지구 남부 칸 유니의 나세르 병원에서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받아 치료를 받는 5살난 오사마 알라카브(Osama al-Raqab).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수십 명의 인질을 잡고 약 1200명을 살해한 지 이제 2주년이 지났습니다. 이 공격에 대응해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6만6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피난민이 되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파괴됐습니다.
완전 봉쇄 1년을 맞은 2025년 가을, 가자 지구의 병원에는 이제 굶주림으로 쓰러진 아이들이 병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10월 초 “현재 가자 내 5세 미만 아동의 20%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며 “식량과 의약품이 차단된 상황이 이어진다면 아동 사망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국제 구호단체와 의학 연구기관의 통계는 이미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7월 기준으로 “5세 미만 아동 1만1877명이 급성 영양실조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가운데 2500명 이상은 생명이 위태로운 심각 단계”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달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매일 200g 줄어드는 몸무게”…‘영양실조 진료소’는 이미 포화
국경없는의사회(MSF)가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시에서 영양실조 치료를 받는 아동 수는 5월 이후 4배로 증가했습니다. 최근 2주 동안만 중증 영양실조 환아의 비율이 세 배로 뛰었습니다. 현지 MSF 의료진은 “아이들의 몸무게가 매일 200g씩 줄어드는 걸 눈으로 본다”며 “단백질 보충식조차 공급이 막혀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MSF는 같은 조사에서 임신부와 수유부의 25%가 영양실조 상태임을 확인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진료소 내 임산부와 수유모의 40%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신생아의 저체중 출산 비율이 급등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죽음의 봉쇄’가 만든 기근…“유아 5만명 이상 급성 영양실조”
영국의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게재된 최근 연구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2만여명의 아동 데이터를 분석해 “가자 지구 내 5세 미만 아동 5만4600명 이상이 급성 영양실조 상태이며, 이 가운데 약 1만2800명은 심각한 상태”라고 추정했습니다. 연구진은 “식량·의약품 반입 제한이 아동의 생존율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는 아동의 상완 둘레가 115mm 미만인 경우 ‘심각한 영양실조’로 분류되며, 이 경우 면역 체계 붕괴와 감염 취약성 증가 등 치명적 위험이 뒤따른다고 설명하면서, 랜싯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6~59개월 아동 22만명을 대상으로 상완중앙 둘레(mid-upper arm circumference, MUAC)를 측정한 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으로 5만4600명 이상의 어린이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이며, 그 중 약 1만3000명은 중증 상태로 평가되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봉쇄 강화 이후 구호물자 반입은 90% 이상 줄었습니다. 밀가루와 조제분유, 의료용 식염수조차 부족합니다. 유엔 식량안보분류(IPC)는 “가자 전역이 식량 불안정 5단계 중 최고 단계인 ‘기근(famine)’ 직전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이들의 몸은 이미 하루하루의 에너지를 내장 조직을 분해하면서 유지하고 있고, 면역 기능은 저하되어 감염에 취약한 상태입니다. 영양실조는 단순한 체중 감소를 넘어 평생의 질병과 장애로 이어지는 무서운 재앙입니다.
“야잔의 죽음은 상징”…국제사회, 인도주의 개입 촉구
뇌성마비를 앓던 10세의 소년 야잔 알카파르네(Yazan al-Kafarneh)는 지난 4월 영양실조로 숨졌습니다. 그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의사도, 약도, 우유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가자 기아 위기의 상징으로 세계 언론에 다수 보도됐습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올해 4월 이후 영양실조 관련 질병으로 85명 이상의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구호위원회(IRC)를 비롯한 구호 기관들은 한목소리로 봉쇄 해제와 통로 확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자의 아이들은 병이 아니라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폭격이 하루를 빼앗지만, 영양실조는 매달, 매주 생명을 훔쳐간다.”라는 외침이 수치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봉쇄 해제와 더 많은 치료용 식량과 조제분유, 의료 자재의 신속한 공급이 이루어져야겠습니다.
논문 :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25)01820-3/fulltext
가자지구 6~59개월 영유아 중 중등도~중증 및 중증 소모성 영양실조 월별 유병률(2024년 1월1일~2025년 8월15일). (사진=The Lancet)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