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현직 판사' 기소…존재감 부각 '사활'
김모 부장판사…재판 편의 대가로 3300여만원 뇌물 수수 의혹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은 무죄…관건은 '재판거래 대가성'
2026-05-06 16:28:26 2026-05-06 16:37:40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받고 재판을 거래한 혐의로 현직 부장판사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공수처 출범 이후 현직 판사를 직접 재판에 넘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1호 기소'였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 사건의 무죄 확정, 공수처 지휘부의 특검 기소 등으로 초유의 악재 속에 단행된 기소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부장판사 사건은 공수처가 수사·기소 역량과 조직 존재 가치를 입증할 중대한 시험대로 평가됩니다.
 
변호사에게 금품을 수수하고 '재판 거래'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모 부장판사가 지난 3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수수) 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6일 오전 공수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및 뇌물공여 등 혐의를 받는 김모 부장판사와 정모 변호사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공수처 수사 결과, 김 부장판사는 2023~2025년 전주지방법원 형사 항소심 재판장으로 재직할 당시 고교 동문인 정 변호사의 각종 사건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300여만원 상당의 이익과 금품을 챙긴 의혹을 받습니다.
 
구체적으로 김 부장판사는 2024년 3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배우자의 바이올린 교습소로 활용하고자 정 변호사 소유의 상가를 1년 넘게 무상으로 받아 1400여만원의 이익을 챙겼고, 1500여만원 상당의 방음시설 공사비를 대납하도록 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현금 300만원이 든 견과류 상자를 직접 건네받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김 부장판사는 정 변호사의 법무법인이 수임한 항소심 사건 21건을 심리했으며, 이 가운데 17건에 대해선 형량을 감경했습니다. 음주운전 전과자가 집행유예 기간 중 재차 술을 먹고 운전을 한 사건에 대해선 실형을 파기하고 벌금형을 선고하거나, 2000억원 규모의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가담자에겐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한 게 대표적입니다
 
정 변호사는 이런 유착 관계를 이용해 의뢰인에게 재판 결과를 예측한 듯 행동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들의 밀접한 관계는 지역 교도소 내에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수처도 "교도소 내에 김 부장판사와 정 변호사의 친분이 소문나면서 정 변호사 법무법인에 의뢰인이 몰린 사실도 접견 녹취 파일 등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6일 현직 부장판사를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뉴시스)
  
이번 사건은 판사와 변호사의 결탁이라는 점이 주목되지만, 공수처로서도 명운이 걸린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공수처는 출범 후 5년간 직접 기소가 6건에 그치는 등 실적이 저조한 데다, 1호 기소였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마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며 위상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에는 해병특검이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재승 차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특히 오는 10월 중대범죄수사청 출범과 맞물려 공수처법 개정 논의가 미뤄지는 상황이라 "자칫 공수처가 문 닫는 것 아니냐"라는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공수처가 현직 부장판사를 기소하고, 수사·기소 역량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과 구조가 유사합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5년 수사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옛 검찰 동료인 박모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은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에 대한 법리 오해가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법조계에선 법원이 뇌물죄 구성 요건이 아닌 부정한 청탁·행위 여부까지 따져 무죄를 선고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실제로 뇌물죄(형법 제129조)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만 입증되면 성립하고, 부정한 청탁이나 부정한 행위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따라서 이번 공판에서 공수처는 재판 거래 대가성 입증에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부장판사 측은 지난해 9월 압수수색 당시부터 "아내가 정 변호사 아들에 대한 바이올린 교습비를 받은 것일 뿐 직무 관련성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선 "공수처가 무리하고 탈법적인 수사를 진행하다 증거를 왜곡해 무리하게 구성한 혐의 사실로 영장을 청구했다"고 했습니다. 공수처가 김 전 부장검사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겁니다.
 
결국 김 부장판사가 21건의 항소심 사건 중 17건에 대해 형을 깎은 패턴, 약 190회 개인 통화 기록들, 성공보수 약정과 판결의 시간적 연결 등을 통해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입증할지가 관건입니다. 공수처는 이날 "현직 부장판사가 재판 진행 중인 담당 사건 변호인으로부터 재판을 매개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밝혀냈다"며 "앞으로도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부패 범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겠다"고 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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