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달군 ‘반도체·AI’ 유치전…현실성 시험대
반도체, 데이터센터…AI공약 ‘우후죽순’
공약 이어지지만 시간과 비용 우려 산재
용인 클러스터 두고 지역간 불화 조짐도
“지자체는 한계 있어”…정부의 역할 강조
2026-06-04 16:52:59 2026-06-04 17:03:08
[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마무리된 가운데, 선거의 주요 화두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이었습니다. 주요 후보들이 반도체 시설과 데이터센터 확보를 앞세우며 경쟁적으로 공약을 낸 것입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반도체 벨트 구축을 추진하는 경기도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주를 공약한 대구 등 당선자 상당수가 핵심 산업시설 확충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기업들의 투자 여력과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입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시민들이 서울 송파구 가락3동 제3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지방선거에서 AI·반도체 호황이 더불어민주당 승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선거 결과에 대해 “한국 유권자들이 반도체 수출 호황, 이에 따른 주식시장 활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여당에 표를 몰아준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371억6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액(877억5000만달러)의 42.3%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반도체 호황에 공약 숟가락 얹기
 
선거 과정에서 업계의 관심은 후보들마다 우후죽순으로 발표한 반도체 산업 유치 공약에 쏠려 있었습니다. 먼저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한 ‘K-반도체 생태계 완성’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설계(팹리스)부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후공정, 연구개발(R&D), 실증까지 포괄하는 전주기형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를 위해 반도체기술원과 반도체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AI 반도체 전략위원회를 설치해 기업 지원에 나설 계획입니다.
 
다른 지역의 공약 경쟁도 본격화했습니다.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팹(Fab) 유치를 공약했고, 첫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에 당선된 민형배 당선인은 “취임 1년 내 10조원 규모의 반도체 시설을 유치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광주권에는 설계·후공정 시설을, 서부권에는 생산시설과 데이터센터를, 동부권에는 소재·부품 산업을 배치해 전남권에 ‘반도체 트라이앵글’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일부 당선인은 지역 특화형 반도체 거점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박찬대 인천시장 당선인은 인천의 반도체 후공정 기반을 활용해 첨단 패키징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원택 전북특별자치도지사 당선인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지역 화학 소재 산업 기반을 활용한 반도체 실증·패키징 시설 유치를 공약했습니다.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경기 수원시 선거사무소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 관련 공약은 더 광범위하게 제시됐습니다.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은 5년간 10조원을 투입해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으며, 우상호 강원특별자치도지사 당선인도 강릉·동해권에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첨단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인은 울산의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 특화 AI 수도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기초자치단체까지 확대하면 수는 더 늘어나는데, 녹색전환연구소·참여연대·환경정의 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전체 선거구 243곳 가운데 63곳(25.9%)에서 데이터센터 유치 공약이 제시됐습니다.
 
“너무 많은 이슈 단기간에 고려”
 
문제는 AI·반도체 공약의 실현 가능성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부지 선정부터 인프라 구축, 장비 도입, 고객사 확보까지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간 내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당장 용인을 예로 들면 오폐수 처리 시설, 전력, 용수 등 검증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건축 시간도 따로 드는 상황”이라며 “시기적으로 1~2년 만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굉장히 많은 이슈가 단기간에 고려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용 부담도 변수로 꼽힙니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팹 1개를 건설하는 데 통상 20조~30조원이 필요하지만, 반도체 관련 공약 상당수가 국비와 지방비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추경호 당선인은 국비·지방비·민간자본을 활용해 총사업비 4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추미애 당선인 역시 재원 마련 방안으로 추가경정예산 등 국비 지원에 중점을 뒀습니다.
 
또 각 지역이 개별적으로 반도체 시설 유치에 나설 경우, 국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핵심 시설을 한곳에 집적해 공급망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목적은 말 그대로 클러스터(Cluster·특정 산업 관련 기업·인력이 밀접된 집적지)를 위한 것”이라며 “그 안에서 반도체 생태계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한 건데, 다시 지방 이야기를 하자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난 1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앙정부의 유기적 연결 중요”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방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힘을 싣고 있습니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안에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대상에서 수도권을 제외하는 조항을 담았습니다.
 
이로 인한 지역 간 갈등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당선인들 간의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으로, 추미애 당선인은 후보 시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분산론에 대해 “이런 말은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반면, 민형배 당선인은 “(용인시) 한 곳에 (반도체 시설을) 집중화시키는 방식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도체 공장 유치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지역별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지자체에서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존에 해오던 걸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중앙정부가 각 지역 정책을 어떻게 연계하고 유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