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산업통상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정산 절차에 본격 착수하기로 하면서, 정부와 정유업계 간 보상 범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유업계는 수출 제한에 따른 손실뿐 아니라 국제유가 변동, 재고평가손익, 정제마진 하락분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정부는 원가 기준 보상 원칙을 유지하고 있어 실제 손실 인정 범위를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나타나 있다. (사진=뉴시스)
10일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이달 중 석유 최고가격제와 관련한 손실보전 기준을 담은 고시를 제정하고, 정산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정부는 최근 정유 4사(HD현대오일뱅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로부터 유가와 운송비, 공정 운영비 등 원가 산정 자료를 제출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손실보전 기준을 확정한다는 방침입니다.
당초 산업부는 지난달 중 관련 고시를 제정하고 정산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었으나, 손실 인정 범위와 보상 기준 등 세부 사항에 대한 검토가 길어지면서 일정이 다소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핵심은 손실 인정 범위입니다. 정부는 가격 통제로 직접 발생한 원가 부담을 중심으로 보상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정에 기댄 기회이익까지 세금으로 보전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으로, 현재 편성한 예비비 4조2000억원 안에서 감당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업계에서는 보상 기준을 더 넓게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휘발유·경유를 해외에 정상적으로 판매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수익과 실제 내수 판매 수익의 차액, 즉 기회비용까지 손실보전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수출 제한과 최고가격제가 동시에 시행되면서 정유업계의 부담이 가중된 점이 있습니다. 정유업계는 매출의 70% 이상을 수출에서 거두고 있는데, 정부가 중동 사태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을 이유로 석유제품 수출 제한과 최고가격제를 함께 시행하면서 수출과 내수 양쪽에서 수익성이 제한됐다는 설명입니다. 원래 해외에 판매해야 할 물량이 내수시장으로 돌려졌지만, 내수 판매 가격은 최고가격제로 묶이면서 정상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 규모가 최소 3조원에서 최대 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 업계는 최근 종전 기대감과 원유 수급 일부 안정화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상황도 손실보전 논의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유가 상승기에는 최고가격제로 판매가격이 제한돼 마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는데, 유가 하락기에는 비싸게 사들인 원유로 만든 석유제품을 낮아진 가격에 판매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은 제한되고, 가격 하락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반영되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이에 고시가 마련되고 정산위원회가 출범하더라도 실제 정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정부와 업계가 손실 인정 범위를 두고 입장 차를 보이고 있는 만큼, 보상 규모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최고가격제 등을 통해 물가 상승 압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히며 최고가격제 유지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제도 시행 기간이 길어질 경우 정유업계의 추가 손실 규모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종 손실 산정과 정산 절차에도 더 많은 기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업계에서는 손실 인정 기준을 협의를 통해 명확히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부와 업계 간 손실 규모에 대한 시각차가 큰 만큼, 정산 시점보다는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보상 원칙과 산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업계 입장에서는 정산 시기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업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상 원칙과 산정 방식이 명확하게 마련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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