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자 분담 원칙"…배드뱅크, 세금+금융사 출연
2025-06-18 06:00:00 2025-06-18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코로나19 대출 연체 조정과 빚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준비 중인 금융당국이 금융사 출연을 원칙적으로 고려하기로 했습니다. 당국은 정부 예산만으로는 50조원에 가까운 부실채권를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대출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민간 금융기관의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금융사 지원 없이 배드뱅크 설립 어려워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현재는 코로나19 대출 중 장기 소액 연체채권 규모를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배드뱅크는 금융사들이 회수하지 못한 장기 연체 대출의 권리를 채권 형태로 저가에 매입해 일부를 소각함으로써 소액 장기 연체자의 회생을 돕는 전문 기관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채권 매입 규모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주 내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한 관계자는 "채무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 분담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대출 차주도 일부라도 상환 의지를 보여야 하는 동시에 채권을 보유한 민간 금융사들도 손실 분담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라고 하지만, 민간 금융사의 재원 투입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말까지 만기가 연장된 코로나19 대출은 47조4000억원인데,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 2조5000억원을 더하면 총 50조원 규모입니다. 당국은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에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처를 적용해왔습니다. 만기는 6개월 단위로 4차례 연장했고, 2022년 9월에는 최장 3년 유예했습니다. 
 
만기를 앞둔 채권 규모는 약 50조원으로 배드뱅크가 개인 무담보대출 채권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를 30% 가격에 매입한다면 약 15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최소 20조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을 예고한 상태지만 국민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만 13조원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정부의 배드뱅크 출자 여력은 크지 않습니다. 
 
결국 은행권 등 민간 금융사의 지원 없이는 '배드뱅크' 구상을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과거 부실채권정리기금이나 구조조정기금도 금융사 출연금, 캠코 전입금, 정부 출연금,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차입금 등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배드뱅크의 경우 채무 탕감 규모가 클수록 금융사 출연금, 특히 은행권에 대한 대규모 출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50조원 규모에 달하는 코로나19 대출을 매입·소각하기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시내 전봇대에 카드 대출 관련 광고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당국 "채권자도 나서야"
 
배드뱅크는 금융사에서 발생한 부실자산을 인수해 정리·회수하는 역할을 전담합니다. 통상 금융사들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2차 추심업체 등에 넘기는 식으로 손해를 최소화합니다. 문제는 대출을 일으킨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채무 관계에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배드뱅크를 활용해 금융사 채권을 매입·소각해 채무를 청산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취약차주의 채권을 사들여 채무조정에 나서는 방식은 국민행복기금(2013년),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2018년), 새출발기금(2022년) 등이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는 배드뱅크도 캠코 산하에 설치할 가능성이 크지만, 별도 기구를 설립할 수도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개인 채권 양수 자격을 비영리법인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인금융 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 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변경을 예고했습니다. 금융위는 배드뱅크 설립을 염두에 두고 규정을 변경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기적으로는 비영리법인 설립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 셈입니다. 
 
이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주빌리은행' 모델이 배드뱅크로 활용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주빌리은행은 채무 탕감을 위해 금융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을 원금의 3~5% 가격에 매입하고, 연체된 채무자가 원금의 7%를 갚으면 나머지를 전부 소각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이처럼 정부 주도 아래 공공기관과 비영리 특수법인까지 거들고 있지만, 또다시 재원 마련 문제로 귀결됩니다. 주빌리은행의 경우 금융사에서 부실채권을 기부받거나 개인의 기부금, 기업 후원금까지 재원으로 활용했습니다. 직간접적 재원 조달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게 될 은행권은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서민금융 정책의 상당 부분이 금융사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고 추가적인 출연 요구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이미 지난 정부에서 상생금융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새 정부에서 또 다른 신규 지원 사업이 시작되면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공공기관, 비영리 특수법인 등이 배드뱅크 모델로 거론되고 있지만, 민간 금융사의 재원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납세고지서 도착 안내문과 대출 전단지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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