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흑해 휴전'…미 중재가 부른 '서방 균열'
백악관, 러시아 요구에 '호응'…서방 대러 제재 약화 수순
2025-03-26 16:25:28 2025-03-26 19:33:41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로 흑해에서의 일시 휴전과 에너지 인프라(기반시설) 공격 중단에 합의했습니다. 3년 넘게 이어진 전쟁이 종전을 향한 중대 분기점을 맞이한 겁니다. 하지만 미국의 중재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러시아가 부분 휴전의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미국은 이에 호응했는데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기조에서 벗어난 협상인 만큼 유럽의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러·우, '종전'까지 한 걸음…부분 휴전 '합의'
 
미국 백악관은 2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는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군사 목적으로 상업 선박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협상안은 미국의 중재로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부분 휴전안'에 대한 실무회담 결과물입니다. 미국은 23일 우크라이나와 회담한 뒤 24일에 러시아와 실무회담을 진행했고 다시 25일에 우크라이나와 회담해 양측의 입장을 조율했습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성명에서 백악관과 같은 내용을 발표했으며 상선의 군사 목적 사용 금지를 감시하기 위한 적절한 통제 조치를 수립한다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미·러의 합의를 수용했다고 전했습니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 합의한 에너지 인프라 시설 공격 30일 중단이라는 부분 휴전안에 대해서도 합의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크렘린궁과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같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은 상호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30일간 멈춘다는 것에 원칙적 합의만 이룬 상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는 공격 유예 시설에 △정유 공장 △석유 저장 시설 △석유·가스관 시설 △발전소 △변전소 등 전력 생산·송전 시설과 △원자력·수력발전소 등이 포함된다고 구체화했습니다. 
 
3국은 흑해·에너지 인프라 분야 휴전 합의 이행을 제3국이 감독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합의했습니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뉴시스)
 
러시아 '제재 완화' 변수로…트럼프 '친러 행보' 주목
 
결과적으로 이날 협상은 지난 18일 에너지 인프라 휴전에서 흑해 휴전까지 확대하며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3년을 넘긴 전쟁이 종전에 이르기까지는 변수가 남았습니다. 
 
3국은 이번 합의와 관련해 공동 회견 형식을 취하지 않고 각각의 발표를 별도로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입장차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러시아는 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단이라는 합의는 지난 18일부터 진행됐다는 입장이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날로부터 발효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합의를 어기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기와 제재를 요청하겠다"고 했습니다. 합의 위반에 따른 조치가 협상 과정에서 생략됐다는 겁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휴전 협의의 결과 이행을 위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크렘린궁은 "러시아산 농산물·비료 수출을 가로막은 각종 제약이 풀려야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제재 해제가 부분 휴전의 전제 조건이라는 건데요.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과 선적·선박, 식품 생산·수출 등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식품·비료 관련 금융기관이 국제 결제 시스템(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 다시 연결돼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백악관은 "미국은 농업과 비료 수출을 위한 러시아의 세계 시장 접근을 복원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런 거래를 위한 항구 및 결제 시스템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이 강화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호응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호응이 서방의 반발을 야기한다는 점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유럽은 러시아 농업은행과 기업 등이 국제 결제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제재를 가해왔습니다. 러시아의 요구대로 결제 시스템이 풀리게 되면 사실상 서방의 대러 제재가 약화되는 셈입니다.
 
<뉴욕타임스(NYY)>도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를 충족시키면 대러시아 경제 제재 해제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며 러시아 압박 강화라는 서방의 정책을 명백히 번복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26일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고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전임 정부인 조 바이든 행정부가 무의미한 전쟁을 끌고 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특히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에너지 등 경제 협력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서방 국가와의 균열은 이미 상호관세와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에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서방에 안보 우산을 제공했지만 서방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전쟁의 책임이 유럽에 있다고 봤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시작된 '관세 폭탄'과 방위비분담금 인상 문제를 놓고 발생한 미국과 서방의 균열은 러시아 제재 문제에서 추가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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