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경찰 지휘부가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회 봉쇄를 준비한 정황이 법정 진술로 드러났습니다. 주진우 전 서울경창철 경비부장은 3월31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봉식 전 서울청장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일부 기동대를 국회로 ‘조용히’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이 3월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이날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 전 서울청장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 2차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공판엔 주 전 경비부장 등의 증인으로 출석, 신문을 진행했습니다. 내란사태 재판에 관한 첫 증인신문입니다.
검찰이 제시한 주 전 경비부장 참고인 진술조서에 따르면, 주 전 경비부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김 전 서울청장 지시를 받고는 최창복 경비계장에게 무전망을 이용하지 않고 조용히 광화문 타격대(34기동대)를 국회로 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앞서 조 청장과 김 전 서울청장은 지난해 12월3일 오후 7시30분쯤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윤석열씨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듣고,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국회 봉쇄를 준비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광화문 타격대가 조용히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무전망 이용도 금지라면 경찰 내부에도 알리면 안 된다는 뜻 아닌가”라고 주 전 경비부장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 전 경비부장은 “수사 관련 보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저는) 사전에 비상계엄 선포를 몰랐다”며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충격적이고 말도 안 된다,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전 서울청장으로부터 광화문 타격대가 이동해야 하는 이유를 듣지 못했다”며 “당일 <서울의소리> 압수수색이 있었고 근처 민주노총 관련 이야기를 들어서 수사 관련 보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국회에 소수 경력(경찰 인력)만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 전엔 계엄에 관한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소수의 경력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검찰은 또 국회에 계엄해제 요구권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초반에는 국회의원 300명만 막으면 됐기 때문에 소수 경력만 필요했던 건 아닌지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지호·김봉식 두 피고인은 국회 봉쇄가 목적이었다면 더 많은 경력이 필요했다며, 소수의 경력으로 안전사고를 대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 전 경비부장은 “국회를 완전 봉쇄한다면 (국회의원) 300명이라고 해도 일정 장소로만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수 경력만 필요하다는 검찰 주장은) 제 생각과 차이가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울러 주 전 경비부장은 두 피고인들과 같이 국회를 봉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주 전 경비부장은 현재 참고인 신분입니다. 주 전 경비부장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일부 의원들이 국회 담을 넘어 본청까지 들어간 데 대해 “현장과 서울청 지시의 딜레이 타임에서 생긴 불상사”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우 의장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건의가 나왔지만 당시 현장 상황을 몰랐던 주 전 경비부장은 “콕 집어서 (의원들 출입을) 지시는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이 “그럼 출입문 차단 목적은 달성한 셈이 아닌가”라며 “그러니 우 의장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국회에 들어간 것 아닌가”라고 묻자 주 전 경비부장은 “문을 통하지 못한 건 맞다”고 답했습니다.
주 전 경비부장 증언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경찰 고위 간부 중 위헌·위법한 포고령에 따라선 안 된다고 반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 전 서울청장 측 변호인이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면서 포고령을 따르면 안 된다고 한 사람 없었느냐”라고 묻자 주 전 경비부장은 “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똑 부러지게 김 전 서울청장에게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면 막으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다”며 “저는 포고령 내용이 생경하고 이상한데 국회로 가는 게 좋겠다고 가벼운 의견 정도를 개진했다”고 말했습니다.
주 전 경비부장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의 위헌·위법성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통제한 셈입니다. 주 전 경비부장은 “비상계엄에 대해 헌법과 법률 위반을 검토했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구체적으로 검토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국회의원 출입 여부를 검토하려면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현장에서 판단하기에 벅찼다”고 답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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