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인공지능(AI) 성숙도에 따르면 AI '선도국'은 미국·중국·싱가포르·영국·캐나다 등 5개국으로, 대한민국은 2군격인 '안정적 경쟁자'로 분류됐습니다. 지난달 발표된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2025년 AI 인덱스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한국 AI는 엑사원3.5, 단 1개뿐이었습니다. AI 3대 강국(G3)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향후 3~4년이 AI 골든타임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추가경정예산 1조4600억원을 확정했습니다. 국가대표격 AI 기업들의 어깨도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국내 대표 AI 기업으로 손꼽히는 LG와 네이버는 각각 '특화 AI 모델'과 '소버린 AI(자주적인 AI)'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핵심 전략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AI 현주소를 짚어보고, 위기 속 기회를 잡을 방안에 대해 모색해봅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LG AI연구원의 거대언어모델(LLM) 엑사원3.5가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 AI 인덱스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AI 모델로 지목됐습니다. 선정된 62개 모델 가운데 한국 모델로는 유일합니다. LG그룹의 산업 데이터 기반으로 만들어진 AI 모델을 통해 한국이 AI 분야에서 독자적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줬는데요. 김유철 LG AI연구원 전략부문장은 "엑사원3.5가 등재된 것처럼 매년 3개 정도의 한국 AI 모델이 이름을 올린다면, 글로벌 톱3 수준의 AI 역량을 확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유철 LG AI연구원 전략부문장. (사진=LG AI연구원)
AI G3, 불가능하지 않다…전략이 중요
AI 3대 강국을 의미하는 'AI G3'는 정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밀고 있는 어젠다입니다. 양당의 대선 후보들도 AI G3 도약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AI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AI 경쟁력 강화는 차기 정부 핵심 국정 과제로 반영될 가능성이 큽니다.
김유철 부문장은 AI G3 목표를 달성하려면 규모의 열세에 굴하지 않고 우리만의 전략을 수립해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AI 경쟁력이 국가 경제 성장과 직결되는 시대인 만큼 해외에서는 이미 정부가 앞다퉈 나서 전략을 세운 바 있는데요. 미국 트럼프 정부는 5000억달러(약 720조원)를 AI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캐나다는 20억캐나다달러(약 2조원) 규모 AI 컴퓨팅 전략을 내놨고, 유럽은 15억유로(약 2조원) 규모 AI 팩토리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경쟁국과 비교하면 다소 늦었지만, 한국도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이달 1조4600억원 규모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를 위한 추경을 편성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 부문장은 "한국은 자본 규모 면에서 불리한 출발선에 있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학술 연구 성과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추가로 편성된 예산이 AI 생태계 강화에 투입돼 유망 AI 스타트업과 대기업 등의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지원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 경쟁력에 '추경+α' 더해 '생태계' 만들어야
정부 예산이 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AI 경쟁력도 중요합니다. LG AI연구원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가 AI 시장을 장악하려는 상황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산업 특화 AI'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진식 LG AI연구원 엑사원 랩장은 "LG그룹의 산업 데이터 기반 고품질 데이터와 글로벌 수준의 성능을 갖춘 산업 특화AI에 주목했다"며 "단계별 학습 기법, 데이터 정제 기법, 산업 현장의 전문 문서를 기반으로 한 합성 데이터 생성 등 고품질 데이터 가공과 차별화된 학습 기술을 통해 성능,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엑사원은
LG유플러스(032640)의 통화에이전트 익시오를 만들었고,
LG생활건강(051900)과는 화장품 효능 소재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또
LG디스플레이(034220) 사내 문서 약 30만건과 사내에서만 사용하는 약 7000개 내부 특화 용어를 학습해 디스플레이 사업에 특화한 생성형 AI를 확보하는 성과도 냈습니다. 이 밖에
LG전자(066570) TV·가전·공조·전장부품 등 다양한 제품군 직무에도 투입될 방침입니다. 이진식 랩장은 "실제 산업 현장 적용 경험과 특정 도메인 전문성을 갖춰 범용 모델보다 높은 효율성과 신뢰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진식 LG AI연구원 엑사원랩장. (사진=LG AI연구원)
신뢰 쌓여야 AI 성장…소버린 AI는 자립 필수 조건
LG AI연구원은 오픈소스로 모델을 공개하며 글로벌로 영역 확장도 꾀하고 있습니다. 이 랩장은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다양한 파트너와 협력해 모델 성능을 향상할 것"이라며 "오픈 채널을 통해 글로벌 이용자의 피드백을 받고 교류해 기술 개발 가속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국가 대표 AI 모델이 나오기 위해서는 산업계와 대중의 AI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김유철 부문장은 "AI 산업 성장의 핵심 전제 조건은 산업계와 대중의 AI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며 "AI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높아질 때 기업은 책임감 있게 AI를 개발할 수 있고, 대중은 AI 기술의 혜택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소버린 AI도 AI 시대 생존을 위해 필수 요소로 꼽았습니다. 그는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파운데이션 모델, 서비스가 서로 연결된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AI 시대에 자립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AI 자립은 국가 안보와 핵심 공공 서비스의 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정보 주권을 지키고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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