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새 정부에서는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이 민간기업으로 이직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금융권 전관예우 폐해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재명정부 5년의 국정운영 방향을 설계할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이런 방향에 대한 얘기가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6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현판식을 열고 약 60일 간의 공식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이재명정부의 정책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국정기획위는 총 7개 분과로 나뉘어 운영되며 경제1분과는 금융·기획재정·공정·국세·관세·통계 등 거시경제 전반을 총괄합니다. 이 분과에는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인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김병욱 전 의원·오기형 의원·홍성국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분과장은 정태호 민주당 의원이 맡았습니다.
특히 김은경 위원은 금융위 해체와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꾸준히 주장해온 인물로로 이번 활동을 통해 금융당국 구조조정의 큰 그림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는 최근 "금융개혁은 제 숙명"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금융당국 출신 이직 러시…민간기업 포진한 '전관라인'
김 위원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핵심은 바로 금융감독 경험이 있는 퇴직 관료들의 민간금융사 이직 관행입니다. 실제로 최근 1년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퇴직자의 민간이직은 60여건에 육박하며 3년 전보다 약 25% 증가했습니다.
금감원만 놓고 보면 올해 1~5월에만 24명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취업심사를 승인받아 민간 기업에 재취업했습니다. 이직자는 국장급(2급)부터 선임급(4급)까지 다양하며 법무법인·회계법인·자산신탁사·코스닥 상장사·가상자산 거래소 등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소비자단체와 일부 시민사회는 이를 '편법 전관예우'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퇴직자는 퇴직 후 불과 2~3개월 만에 거래소에 입사해 논란을 키웠습니다. 공직자윤리법상 퇴직공직자는 일정 기간 관련 업무기관으로의 취업이 제한되지만, 금감원 직원은 공무원이 아닌 공직유관단체 소속으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취업제한 기준이 완화돼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몇 년간은 금감원의 4~5급 젊은 직원들도 대거 이탈하고 있습니다. 감독당국의 인사 적체, 낮은 보수, 민간 대비 복지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예전에는 금융 부처 출신 이직자 절반 이상이 로펌 고문으로 이동하기 위해 취업심사를 받았습니다. 전관의 조력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이 로펌을 찾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금융사 사외이사·고문·전문위원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직 흐름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특히 비교적 젊은 4급 직원의 이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입니다. 이들은 민간 보험사나 가상자산 거래소, 거래 플랫폼 등으로 다양한 회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 출신 인력이 내부통제나 준법감시 분야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있어 기업들이 영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법령 개정에 따라 이직 트렌드도 좌우된다"며 "예를 들어 요즘처럼 상법개정안이 화두가 되면 기업들의 법률 자문 수요가 많아지니 로펌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금융당국 출신들 민간회사로 못 가게 해야"
금감원장과 신설이 예상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장 하마평에 올라 있는 김 위원은 지난 12일 이재명정부의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관련해 "감독 목적에 부합하는 독립성 확보가 너무 중요한데 관치 금융이 너무 팽배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가 산업과 손잡아 벌어진 사건이 사모펀드 문제, 동양증권 문제, 저축은행 사태, 가계부채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은 "감독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금융인 출신 인사들이 옷 벗고 나가서 다시 민간금융사로 진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금융인 출신들이 민간 회사로 가는 것 못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나 영국 금융감독청(FCA)도 퇴직률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급여 수준을 자체 결정하거나 정부의 재량권을 허용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민관 인력교류를 확대하며 민간 전문가의 공직 진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금감원은 예산과 증원 모두 금융위 심사를 거쳐야 하며 급여체계 독립도 쉽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경력직 채용을 확대하고 있으나 이들조차 처우 미달 등으로 다시 빠르게 이탈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구조에서 김 위원의 개편안이 실제 국정과제에 반영될 경우 이재명정부 금융개혁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법 개정과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며 "국정기획위가 이를 어떻게 설계하고 정치적으로 얼마만큼 설득하느냐에 따라 실현 가능성이 갈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한주(왼쪽)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경제1분과장을 맡은 정태호 민주당 의원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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