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 문명과 라오인 이야기)(21)고양이의 선물
마당에서 시작된 인연, 고양이와의 첫 만남
나카오와 센타오, 모성이 만든 곁주기
입양이 아닌 공존, 다시 고양이와 함께할 날을
2025-09-01 06:00:00 2025-09-01 06:00:00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 마당
 
2014년 라오스 수도 위양짠 외곽, '황금의 언덕'이란 뜻을 가진 폼캄 마을에서 비로소 마당이 딸린 주택에 살게 되었다. 마당에는 잭프룻나무가 한 그루, 망고나무가 두 그루, 용안나무 여러 그루가 서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거늑했다. 열대 유실수의 단점은 과일이 풍성한 만큼 한없이 낙엽이 진다. 왜 열대 가옥의 상징이 망고가 아닌 야자수일까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집주인의 지각없는 조경 감각으로 아침, 저녁으로 마당쇠가 되어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행복에 겨운 투정이기도 했다. 낙엽을 그러모아 불을 놓고 장미목 안락의자에 앉아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는 일이 습관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밤이 되면 마당에 침입자가 나타난다는 것을 어느 날 알아차리게 되었다.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내가 이사를 오기 전부터 녀석은 이 마당을 사냥터로 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 접근
 
같이 살던 고양이 나카오가 낮잠 자는 모습. (사진=우희철 작가)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마당에 한국산 황포를 던져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살아 있는 게 아닌데도 녀석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 사주경계부터 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편한 식사를 하라고 아예 자리를 피해주었다. 
 
다음 날엔 현관 옆에 태국산 생선 통조림을 하나 까두었다. 접시 하나와 공기 한 개를 녀석의 식기와 물그릇으로 양보했다. 이렇게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내 관심은 그 녀석의 식성이었다. 달걀부침, 부산오뎅, 돼지고기 날것과 볶음….
 
밤의 관계가 어느덧 낮으로 연장되었다. 낮에 본 녀석은 삼색 고양이였고, 얼굴만 무늬가 없이 하얗다. 사귀게 된 마당에 부를 이름이 있어야 했으므로 '나카오'란 이름을 붙였다. '하얀 얼굴'이란 뜻의 라오어. 나카오는 어느 결에 다가와서 내 종아리에 얼굴을 비비고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손길도 허락했다. 암컷이었다. 
 
3. 주인 나카오 
 
밤에 방문하는 고양이는 나카오만이 아니었다. 나카오에게 내가 밥을 차려 준다는 걸 알았는지 다른 고양이 몇 마리가 방문하기도 했다. 이왕에 쓰는 인정인데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카오는 밥그릇을 썼지만 마당에 음식을 뿌려 두어야 경계심을 푸는 녀석들도 있었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음식 다툼을 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녀석이 먹고 물러나면 다른 녀석이 차례를 잇는 식이다. 
 
낮까지 관계가 이어지는 고양이는 나카오가 유일했다. 어느 순간이 되자 나카오가 마당의 유일한 주인이 되었다. 몸집이 크고 사납게 생긴 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녀석은 마당을 스쳐갈 뿐,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았다. 멀리 담장 위에서 나카오와의 수작을 지켜보기만 할 뿐 곁을 주지는 않았다. 나카오의 남자 친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고양이들과도 관계를 맺었는데 수컷들은 내게 곁을 준 적이 없었다. 
 
밤낮 없이 상시적인 관계가 되자 나카오를 위해 사료를 샀다. 내가 컴퓨터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나카오는 차탁을 침대로 삼아 낮잠을 잤고, 놀아주려는 기색이 없으면 신발창을 물어뜯기도 했다. 
 
4. 선물
 
밤에 밥 먹으러 온 고양이 두 마리. (사진=우희철 작가)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커다란 도마뱀 한 마리가 죽은 채 놓여 있었다. 작은 도마뱀을 라오인들은 '찌찌얌'이라 하고, 밤에 큰 소리로 정적을 깨며 우는 도마뱀을 '뚜깨'라 한다. 큰 도마뱀이 우는 소리가 '뚜깨 뚜깨' 하는 것처럼 들려 얻은 이름이었다. 라오인들은 뚜깨가 일곱 번을 울면 행운이 온다고 했다. 유심히 들어보면 여섯 번만 울거나, 일곱 번째가 되어 옳거니 하고 있으면 한 번을 더 울어버려 김이 빠졌다. 
 
뚜깨를 먹는 소수민족도 있다고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카오가 알면 실망할까 봐 몰래 가져다 버렸다. 그런데 내가 나카오의 식성을 탐구했듯이 나카오도 마찬가지였다. 나카오는 뚜깨에 대한 내 반응이 신통치 않자 죽은 새를 물어다 놓았다. 나카오가 마당에서 새를 사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재빨리 도약을 해서 나뭇가지에 앉은 새에게 일격을 날렸다. 이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나카오의 짓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지 않는 선물을 고양이의 선물이라고 한다는데 나카오가 정말 그랬다. 나카오의 노력이 밉지는 않았다. 사실은 나카오가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내겐 선물이었다. 라오스 주택에 살다 보면 쥐가 많다. 밤에 천장을 기어다니는 소리로 잠을 설치기도 한다. 
 
5. 모성
 
나는 나카오를 집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녀석에게 인정한 최대 영토는 현관문까지였고,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밀쳐냈다. 둘의 놀이터는 어디까지나 마당이었다.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나카오는 마당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배를 뒤집는 동작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카오는 임신 중이었다. 배가 한참 불러오고서야 알아차렸다. 새끼를 네 마리 낳았다. 네 마리 모두 암컷이었다. 한 마리는 크기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세 마리는 어른이 되었다. 나카오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네 마리 모두 또 암컷. 
 
내가 집주인과의 어색한 관계가 되어 씨카이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나카오와 헤어지게 되었다. 나카오와의 작별이 섭섭했지만, 같이 이주할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씨카이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회색 줄무늬 고양이와 가까워졌다. 치즈태비였다. 나카오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가까워졌다. 시간이 흐르자 이 녀석도 어느 결에 다가와 종아리에 볼을 비비고 가르릉거리면서 곁을 주었다. 회색 줄무늬가 있어 '센타오'란 이름을 붙여준 이 고양이도 암컷이었다. 센타오가 곁을 주기 시작했을 때는 임신 중이었다. 센타오를 통해 나카오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 나와 가까워졌을 것으로 추측하게 되었다. 
 
모성. 새끼를 가진 상태라 안정적인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는 본능이 나카오와 센타오를 내게 다가오게 했을 것이다. 센타오는 배수구 밑에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네 마리 모두 암컷들이었다. 우연이지만 신기한 일이었다. 
 
6. 입양?
 
싸얌고양이가 잠든 모습. (사진=우희철 작가)
 
내가 단독주택에 살게 되는 날, 다시 고양이와 함께할 것이다. 입양이란 이름으로 돈을 주고 고양이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에게 고양이가 가축화되었던 과정을 마치 재현이라도 하는 것 같은 환상적인 체험을 답습하고 싶다. 고양이를 보기가 어려운 외진 곳에 살게 된다면 고양이가 많은 절에서 한 쌍을 데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라오스에 예쁜 고양이는 얼마든지 있다. '코랫'이라고 부르는 회색 고양이종은 과거 라오스 왕국 땅이었던 코랏분지에서 이름을 딴 이 동네 고양이다. 샴고양이는 '싸얌고양이'가 정확한 이름으로, 싸얌은 태국의 옛 이름이다. 태국이 라오스의 이웃인 관계로 싸얌고양이가 집고양이가 아닌 상태로 자주 눈에 보인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절 셋방살이를 하던 공동주택 부근에서 싸얌고양이를 보았는데 시기와 조건이 좋지 않아 거리두기를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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