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여러 사건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취업을 미끼로 유인된 대학생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캄보디아에 우리나라가 올해에 ODA로 지원하는 금액이 4353억원이라고 합니다. 2024년의 2178억원에서 두 배나 증액된 수준으로 우리나라에서 ODA 원조를 받는 나라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받고도 한국인에 대한 사기와 납치를 방조한 캄보디아 정부가 괘씸해 ODA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어느 종교단체가 전직 대통령 부인에게 고가의 명품 핸드백과 보석 목걸이를 선물한 것도 캄보디아 ODA 사업에 대한 청탁이 목적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종교단체는 캄보디아 메콩강 골든 아일랜드에 대규모 복합 개발사업을 ODA와 연계한 프로젝트로 진행할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도대체 ODA가 무엇이길래 이리도 요란한 것일까요? 일반 국민은 ODA가 무엇이며 왜 이렇게 큰돈이 쓰이는지 잘 모릅니다.
ODA는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약자로 선진국이 저개발국의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돕기 위해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를 뜻합니다. ODA의 목적은 낙후된 국가의 빈곤 퇴치, 인프라 확충, 기후변화 대응 등을 통해 경제 격차를 완화하고 공동 번영을 도모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6·25전쟁 이후 공적원조를 받던 수혜국이었다가 경제발전을 이룩한 다음 1991년부터 ODA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정식 공여국이 되었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한 드문 사례로 꼽힙니다.
취업을 미끼로 유인된 대학생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캄보디아에 한국이 막대한 ODA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국인에 대한 사기와 납치를 방조한 캄보디아 정부가 괘씸해 ODA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사진=뉴시스)
ODA 예산은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역대 최대치인 50억달러(6.5조원)에 이릅니다. 통상적으로 무상원조가 70%가량이고 나머지는 차관이나 융자 방식의 유상 지원입니다.
ODA의 위력은 무상원조에 있습니다.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나라가 없지요. 무상이라 하지만 진짜 거저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 조건이 따라붙고 대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표면적인 명분은 개도국의 자립을 위해 ODA 원조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ODA 자금을 영악스럽게 잘 활용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동남아 국가에 일본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많이 깔린 배경에는 ODA 지원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일본은 아시아의 점령국에 대한 배상을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ODA를 제공했고 1980년대에는 세계 최대의 원조공여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일본은 명목상 무상으로 ODA 자금을 제공하면서 교묘하게 그 이상의 대가를 얻어내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가령, 베트남의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고속도로를 ODA 자금으로 건설해줍니다. 무상원조의 지원 조건으로 공항 근처의 부지를 일본 기업의 산업단지로 저렴하게 제공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고속도로가 완공되어 공항 주변의 땅값이 오르면 일본 기업들은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됩니다. 국가가 ODA 자금을 제공하고 혜택은 일본 기업들이 거두는 셈이지요. 일본의 ODA 원조는 일본 기업들이 현지 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국책사업을 수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며 아시아 시장을 일본이 제패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미국은 국제개발처(USAID)를 중심으로 연간 약 400억달러(55조원)의 대외 원조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세계 최대 원조국으로서의 위상을 자랑합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세계 각지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USAID가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하며 대외 원조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며 사실상 USAID를 해체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미국의 대외 원조가 중단되어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지난 2월 초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대표들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참석자에게 앞으로 미국 몫까지 일본이 활약해주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명했습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이용해 공격적으로 ‘전랑외교’(戰浪外交)를 펼칩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유상이므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합니다. 중국의 차관과 융자를 상환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항구나 철도를 중국에 양해해 경제적으로 종속되면서 반중국 정서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ODA와 경제협력을 빌미로 개도국에 대한 영향력과 이권을 확보하는 방식은 제국주의적 접근입니다.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제국으로서 식민지를 관리해본 경험을 갖지 않고 ODA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진짜 순수하게 아니 순진하게 그 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원조를 합니다. 경제적 이권이나 기업의 해외 진출에 별 관련이 없습니다. 거창하고 치밀한 계획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돈을 쓰면서 생색도 내지 못합니다. 수혜국에게 별 영향력이 없고 국내에서는 종교단체의 청탁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이제는 다른 선진국을 본받아 좀 더 영리하고 현명하게 ODA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물러난 빈자리를 우리나라가 차지해 아시아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큰 힘을 받을 수 있는 ODA 사업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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